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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예술로 읽다(5)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 북측의 집단체조 시작은 1930년 농촌혁명을 위해 활동하던 김일성 주석이 창작하고 진명학교와 삼성학교 학생들이 출연한 ‘꽃체조’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조중합작영화 '평양의 약속'에 나오는 집단체조의 한 장면. [사진출처 : '평양의 약속' 켑처]

1987년 4월11일 김정일 위원장은 “집단체조를 더욱 발전시킬 것에 대해서”라는 강령적 문헌을 발표하였다.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번영하는 주체조선’이라는 집단체조 작품을 관람하고 밝힌 김 위원장의 교시 이후 북한의 집단체조는 독보적인 양식화와 예술화로 질적 양적 발전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2002년 세계 최대의 야외 공연인 ‘아리랑’을 선보였다.

집단체조(massgame)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 체조나 연기를 하는 것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개폐막식에 치러지는 것이 보통이며, 과거 대한민국이나 일본에서 독재정부 시절 정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국가적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검색이 된다.

북측의 <조선말대사전(2)>(1992)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을 하고 있다. "수천 수만 명의 큰 집단이 참가하여 진행하는 높은 사상성과 예술성에다 세련된 체육기교가 배합된 새 형의 종합적인 체육예술, 체조와 무용 율동을 기본표현 수단으로 하고 이에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적 수단들이 유기적으로 통일되면서 일정한 주제사상에 근거하여 하나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화폭을 이룬다. 집단체조는 청소년 학생들의 체력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그들 속에서 집단주의 정신을 기르고 조직성과 규율성을 키워주며 예술적 소양도 높여준다."

북측의 집단체조 시작은 1930년 농촌혁명을 위해 활동하던 김일성 주석이 창작하고 진명학교와 삼성학교 학생들이 출연한 ‘꽃체조’로 알려져 있다. 맨손체조, 봉체조, 곤봉체조와 같은 집단 체조를 통해 심신을 단련케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북측의 집단체조가 공연화된 것은 1947년 4월22일 민청체육관 개막식 경축행사로 열린 ‘특별체육의 밤’에서였다.

이 해 5.1절 행사로 제작된 ‘김일성 장군 만세!’와 다음 해 11월에 선보인 공화국 창건 기념 ‘조선은 하나다’를 원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카드섹션 등을 하는 ‘배경대’가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55년 조국광복 1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광복의 노래’였으며, 이 ‘배경대’에 북측 지도자의 모습이 최초로 형상화된 것은 1964년 5월2일에 열린 ‘장자강반의 새 노래’에서였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라는 장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지도로 규모를 키워 10만 명이 출연한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 ‘백전백승 조선노동당’ 공연이었다. 사진은 조중합작영화 '평양의 약속'에 나오는 집단체조의 한 장면 [사진출처 : '평양의 약속' 켑처]

1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형공연으로 규모를 키운 1958년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이후, 현재의 모습을 처음 선 보인 것은 1961년 9월19일 5만 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해 김일성경기장(당시 모란봉경기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4차 대회를 경축하는 대집단체조 ‘로동당 시대’이다.

이에 앞서 1961년 7월5일 당시 내각 직속 체육지도위원회를 김일성 주석이 방문을 하였다. 여기서 김 주석은 집단체조의 대형화와 입체화, 율동화를 지적하며 체육행사 수준에 머물고 있던 집단체조를 체육예술작품으로 발전시킬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조선(북한)식 집단체조의 본보기 공연이 만들어진 것이고, 이것을 토대로 2년 후 첫 인민상 계관작품인 ‘천리마 조선’이 제작이 되었다.

“인민들의 정치사상적 교양과 청소년들의 체력 단련 그리고 대외적 권위를 높이는 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어 국가적 관심사업으로 지속되어 온 집단체조는 1970년대 개화기를 맞는다. 1971년 11월10일 김 주석의 제안으로 ‘집단체조창작단’이 설립이 된 것이 계기였다.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아리랑” 공연 중 한 장면. [사진출처 : 유튜브 켑처]

체조, 배경대, 음악 창작실 등 14명의 성원으로 출발한 창작단은 북측 지도자의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조선의 노래’, ‘인민들은 수령을 노래합니다’, ‘오늘의 조선’, ‘주체의 조선’, ‘빛나는 조선’ 등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장군님 따라 붉은기 지키리’, ‘조선아 너를 빛내리’와 같은 1만여 명이 출연하는 실내 집단체조도 창작을 하였다. 이 단체는 1985년 11월7일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라는 장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지도로 규모를 키워 10만 명이 출연한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 ‘백전백승 조선노동당’ 공연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없었던 새로운 양식에 대해 김 위원장이 아이디어를 내었고, 체조와 무용을 ‘율동’이라는 매개로 배합 형식화에 성공한 이 공연을 김 위원장은 4차례나 관람을 했다고 한다. 이 공연은 김일성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집단체조창작단’도 지금은 창작연출부, 제조와 배경대, 음악창작부 등 부문별로 200여 명의 창작가와 스텝이 활동 중이고, 100여 명으로 구성된 ‘취주악단’과 부속 ‘청소년체육학교’까지 두고 있는 단체로 성장을 했다. 또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46개 나라에 집단체조대표단을 파견해 집단체조 창작공연을 지도하기도 했다.

▲ 조중합작영화 '평양의 약속'에 나오는 집단체조의 한 장면. [사진출처 : '평양의 약속' 켑처]

집단체조 행사의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대본창작과 계획화 단계이다. 총 대본을 창작하고 이것을 기초로 체조, 음악, 배경대 등 부분별 대본을 완성하고 의상 도안, 대열 편성, 자재 수급과 예산안을 수립한다. 두 번째 단계는 학생들에 대한 훈련 지도이다. 하루 2시간씩, 방과 후에 참가가 약속된 학교 학생들에게 기초동작 등에 대한 지도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의상과 소품 등이 제작 지급이 되고, 무대 설계와 설치 등이 병행이 된다. 마지막 단계는 종합훈련과 시연회이다. 기초 훈련을 마친 학생들은 김일성경기장, 평양체육관과 4.15문화회관 광장에서 부문별 훈련을 마치고 종합훈련에 참여한다.

학습권을 보장하고 학생 참여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평양 내 20개 학교를, 집단체조를 전문으로 하는 학교로 지정을 하였고, 창작단 산하에 기계체조와 예술체조를 주로 하는 청소년체육학교를 김일성경기장에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격년제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과 국가체육위원회, 집단체조창작단이 공동주최하는 집단체조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상급학교로 진학을 원할 경우에는 조선체육대학교(집단체조학부)가 있다.

집단체조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아리랑”이었다. 2002년에 김일성 주석 탄생 90주년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아리랑”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마무리하고 2000년대 새롭게 '강성대국'으로 나아가고가 하는 북의 의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아리랑” 공연 중 한 장면(사진출처 : 유튜브 켑처)

기존의 성과에 북측 최고의 예술가들과 세계 최고 수준의 교예단이 결합하고, 현존하는 북측 최고의 무대기술이 접목이 된, 말 그대로 인류사에 남을 블록버스터 공연이었다. 화면길이 140m, 높이 60m, 영사거리 210m의 환등 효과와 2만 명의 배경대가 어울린 화폭과 운동장 위의 10만 명의 출연진이 만드는 역동적이고 환상적인 공연은 세상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압권 그 자체였다.

철의 장막이라고 명했던 북을 국제사회에 개방하는 창이 되었던 이 작품은 2007년 8월 세계 최대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가 되었다. 2002년 초연 당시 90여회 공연 동안 북한 주민과 해외동포, 외국인 400여만 명이 관람했다. 2010년에는 공연을 촬영한 사진작가 구르스키의 작품이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서 23억2000만원에 경매가 되면서 다시금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 집단체조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아리랑”이었다. 2002년에 김일성 주석 탄생 90주년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아리랑”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마무리하고 2000년대 새롭게 '강성대국'으로 나아가고가 하는 북의 의지를 담은 작품이다. 사진은 조중합작영화 '평양의 약속'에 나오는 집단체조의 한 장면. [사진출처 : '평양의 약속' 켑처]

‘반갑습니다’란 익숙한 노래로 시작되는 아리랑 공연에서, 통일에 대한 절절한 낭독이 기억에 남는다.

이 세상 이 하늘아래 오직 단 하나의 갈라진 땅

갈라진 나라 갈라진 아리랑 민족이 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 세월에 백발이 된 어머니가

아들의 모습조차 알아볼 길 없고

헤어진 아들이 젖을 먹여 키워 준 어머니마저 몰라보게 된

이 비극의 땅

예로부터 화목하게 살아온 우리 민족이 하루 아침에

생떼같이 갈라져 남남이 되어가는 이 땅

세계의 량심이여 대답해 보라

외세가 가져다 준 이 비극으로 하여

우리 아리랑민족이 언제까지 이렇게갈라져 살아야 하는가

* 이철주 위원은 10년 넘게 남북 사회문화교류 영역에서 활동해 온 문화기획자다. 금강산가극단 내한공연 제작, 평양조선국립미술관 내한전 합의, 사할린 남북 해외 청소년 평화미술전 주관, 조선무용50년-북녘의 명무, 철원노동당사 DMZ평화음악회, 조선학교 중등교육 70주년 기념 꽃송이콘서트 등을 제작했다. 현재는 남북합동음악회와 평화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철주 위원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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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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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07-30 08:15:29

    이러다가 저 보수성향의 악녀로 낙인찍힐까봐 걱정되네요? ㅡㅡ;;;;;   삭제

    • 박혜연 2016-07-27 17:20:11

      보수언론들이나 극우보수북한관련 언론사이트들에서는 아리랑공연을 아동학대라고 기사를 쓴적이 있더라구요? 게다가 요덕스토리의 연출자인 정성산씨도 아리랑공연외의 대집단체조에 대해서도 폭로한바가 있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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