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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다음 번에는 소극으로<프랑스 혁명사 3부작 2 -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중 첫 번째인 <1848년부터 19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은 “유물론적 견지에서 현대사의 한 토막을 주어진 경제적 상황으로부터 설명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엥겔스)”라 할 수 있다. 혁명을 전후한 정치적 사건들을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요인들의 작용과 이에 다른 계급들의 갈등으로 소급하여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중 두 번째인 이 책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부르주아 의회체제에 대한 정치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마르크스의 수많은 저작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저작이라고 평가받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이다.

제목의 "브뤼메르 18일"이란 루이 보나파르트의 삼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799년 11월 9일(프랑스 혁명력 8년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혁명 정국에서 일으켰던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가리키는 것이다.

1848년 2월 혁명의 성과로 임시정부는 모든 성인 남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보통선거제가 1848년 6월 도입했다. 그러나 1849년 4월 보궐선거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중소부르주아지가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이자 봉건 지주, 산업 부르주아지, 금융 부르주아지 등으로 구성된 의회는 1849년 5월에 보통선거제를 폐지하여 버린다.

당시 프랑스의 선거법에서 대통령은 200만 표 이상을 획득해야 했고 이에 미달하면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의회의 보통선거제 폐지는 유권자 수를 줄임으로써 대통령 선거에서 200만 표 이상 득표자가 나오는 사람이 없게 하여 대통령 선출 권한을 의회가 가지려는 꼼수이기도 했다.

이렇게 의회가 민주공화제의 기본 원칙을 유린하기 시작하자 한 해 전인 184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행정 권력을 장악한 루이 보나파르트는 인민 대중의 이름을 걸고 의회를 농락하기 시작한다.

당시 프랑스 헌법은 대통령의 연봉을 60만 프랑으로 정해 놓았었다.

그러나 루이 보나파르트는 기밀비의 명목으로 연봉과 같은 60만 프랑을 의회로부터 얻어낸다. 60만 프랑을 큰 문제없이 얻어낼 수 있게 되자 이젠 300만 프랑의 연봉을 요구한다.

난색을 표하는 의회를 상대로 보나파르트는 보통선거제 폐지가 인민에 대한 범죄행위이며 이를 프랑스 인민 대중에게 폭로하겠다고 위협하여 300만 프랑에는 못 미치지만 원래 헌법이 정한 연봉의 네 배에 가까운 216만 프랑을 확보한다.

더 나아가 보나파르트는 헌법상 단임제인 대통령제를 중임제로 개헌하라고 의회에 요구한다.
헌법 개정을 주저하는 의원들에게 보나파르트는 온갖 종류의 타협, 야합, 협박으로 구슬린다.
또 다른 한편 서로 다른 정치 세력으로 구성된 의회 내에서는 또 그들끼리의 복잡한 이해득실 계산으로 합의안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자기밖에 모르는, “머리만 어두운 구멍에 숨기면 자신이 숨은 줄 아는 타조와 같은 바보이며 무능력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의회라는 사실을 보나파르트는 조장하고 또 이를 대중에게 알리고 난 다음 1851년 12월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해 버린다.

이후 그는 대통령의 재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한 다음 1852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공화정을 폐지하고 제정을 선포한 다음 황제로 등극한다.

이 역사의 희극에서 연출자는 보나파르트이고 희극 배우는 의회이다.

이 책의 1장에는 현재까지도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문장이 등장한다. 바로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라는 문장이다.

제1공화정을 쿠데타로 전복시켜 버린 삼촌과 같이 조카도 제2공화정을 쿠데타로 전복시켜버린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역사의 반복이다.

그러나 삼촌이 반복시키는 역사와 조카가 반복시키는 역사에는 차이가 있다. 삼촌인 나폴레옹이 프랑스 인민의 영웅이었으며 그런 영웅의 몰락이 비극적 결말을 갖는다면, 삼촌의 이름으로 삼촌의 쿠데타를 반복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공화체제 유린은 희극, 희극 중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笑劇)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1848년 2월 혁명으로 들어선 제2공화정의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로 나폴레옹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들었다.

“나폴레옹 신화를 맹신하는 분할지 소농민의 압도적 지지 획득과 함께, 6월 학살(3000명 이상이 희생당한 블랑키파 민중봉기) 진압 공적에도 자유주의 공화파로부터 찬양은 커녕 아무런 반대급부조차 획득하지 못한 군부, 왕정복고를 공공연히 원했던 대자산가계급, 6월 학살 희생자들인 하층 소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특히 이들에게 ‘적의 적은 친구’라는 속담에나 합당한 심정적 반발,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 우연한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혁명에 놀라거나 지친 나머지 향수에 시달리며 주춤거린 혁명세력을 보고 마르크스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저 유명한 말을 떠올린다. “이곳이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바로 지금 여기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걸’ 보여 달라는 것인데, 이런 단말마의 외침이 터져나올 때까지 혁명의 후퇴는 계속된다고 마르크스는 얘기한다.

결국 혁명은 갈 데까지 간다. 부르주아지마저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배반한 채 공화정과 보통선거제를 폐지하고 보나파르트의 황제 등극, 즉 왕정복고에 협력한다.

그 결정적 이유는 당시 유럽을 배회하던 사회주의 유령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했다.

“가장 단순한 부르주아적 재정개혁에 대한 요구와 가장 평범한 자유주의, 가장 형식적인 공화주의, 가장 협소한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요구는 ‘사회에 대한 도발’로 단죄당하고 ‘사회주의’로 낙인찍힌다.”

그리하여 왕당파와 부르주아지는 “재산, 가족, 종교, 질서”의 이름으로 예전 독재자의 평범한 조카를 대통령으로, 황제로 세우는 데 반대하는 세력을 모조리 사회주의자, 즉 ‘빨갱이’로 몰아갔다.

170년 전 유럽의 노동자와 서민을 공격하려는 용어인 “빨갱이” “내란/폭력” “종북좌파”가 21세기 현재 시점에서도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 의도에 이용되어 한반도 남단에서 공공연하게 외쳐진다는 것이 가슴 아프고도 슬픈 현실이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1849년 5월 탄생한 부르주아 의회체제에서부터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테타가 일어난 1851년 12월 2일까지의 정치사회적인 사건의 흐름은 맨 아래 ‘제사건’ 참고)

결국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칼 마르크스가, 1848년 2월 혁명의 결과로 성립한 프랑스 의회공화정이 어떻게 4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기에 루이 보나파르트라는 기괴하고도 평범한 인물의 쿠데타에 의해 독재체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분석한 논문이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가 주도하는 의회공화정의 생성과 사멸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대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계급투쟁과 연동되어 있는 보통선거제의 정치적 역할이다.

다시 말해서, 이 시기 보통선거제는 계급투쟁 과정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의 정치적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누가 규정하느냐에 따라 프랑스 제2공화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독립변수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은 보나파르티즘으로 명명할 수 있는 행정독재체제의 성립이 의회공화정 스스로 보통선거제를 폐기함으로써 발생한 결과였음을 일깨워준다.

이 책은 계급투쟁에 입각한 정치적 분석이라는 마르크스의 기본관점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중반 유럽전체를 강타한 초유의 보나파르트 쿠데타를 심도있게 분석함으로써 연구주제를 구체의 수준으로 확장하고 이에 기반한 정치적 사유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저작을 통해서 현대 정치학과 민주주의 이론의 주요쟁점 가운데 하나인 의회제와 보통선거의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가 얼마나 통찰력 있는 분석을 행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저작에 대한 마르크스의 자평은 다음과 같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근대 사회에 계급이 존재한다거나 계급투쟁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 공적이 마땅히 나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기 오래전에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계급 간의 경제적 적대관계를 기술했습니다. 내가 새롭게 행한 일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1) 계급의 존재가 생산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 2)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 3) 이 독재 자체는 계급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통로일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었습니다.”(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 입법 국민의회 (1849년 5월 28일- 1851년 12월 2일) 시기의 제사건 >

5월 하순 2만의 증원군을 로마에 급파
5월 28일 입법의회 소집
6월 11일 로드뤼 롤랭, 내각을 탄핵, 12일 탄핵안 부결
6월 13일 민주주의적 쁘띠부르조아지 시위. 샹가르니에 의해서 분쇄, 민주파 신문금지, 계엄령 선포, 질서당의 독재완성, 로마공격 재개, 로드뤼 롤랭 도주
6월 19일 정치클럽 탄압을 위한 새로운 법률제정
7월 3일 프랑스군 로마 입성
8월 12일 국민의회 유회
8월-9월 보나빠르뜨의 지방순시
11월 1일 바로 내각해임, 도뿔 내각 임명
11월 14일 제정장관 풀드의 연설, 주세존속을 엄명(농민들의 혁명화)
1850년 1월 14일 신교육법이 제안됨
3월 10일 보통선거, 사민당 뷔달, 드폴로뜨, 까르노등이 당선됨
5월 31일 신선거법 시행으로 보통선거권 폐지
8월 11일 국민의회 휴회
8월 26일 루이 필립의 사망, 왕당파 음모의 재현
8월 루이 보나빠르뜨 지방 순시
10월 3일 10일 보나빠르뜨 생모르와 사또리에서 주연을 베품
12월 모갱사건
1851년 1월 10일 보나빠르뜨 신내각을 임명
1월 12일 질서당의 핵심 샹가르니에 면직
1월 18일 의회, 내각에 불신임 투표(415/286으로 가결)
1월 20일 내각 총사퇴로 과도내각 임명
4월 11일 보나빠르뜨, 1월 18일의 내각을 부활시킴
7월 19일 대통령 임기연장의 헌법개정안 부결
8월 10일 의회 휴회
10월 10일 보나빠르뜨, 보통 선거권의 부활의지를 내각에 알림
10월 16일 내각 해임
10월 26일 또리니 내각 성립
11월 13일 보나빠르뜨, 의회에 보통선거권 부활 요구
12월 2일 보나빠르뜨의 쿠데타 발생. 의회해산, 보통선거권부활, 계엄령 포고
12월 4일 군대에 의하여 모든 저항운동 진압
12월 20 보나빠르뜨 국민투표로 새로운 정체의 승인을 묻는 선거 실시 (92% 찬성)
[2019년 6월 08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 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 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이장수 운영위원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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