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깰 수도 엎을 수도 없는 불가역적 북미협상<분석과 전망> 지금의 북미협상이 옛날의 북미협상과 다른 점
  • 한성 자주통일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4.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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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런스 오쇼너시 미 북부사령관{사진 : VOA캡처]

미국 내 전쟁세력이 북에 무기 폐기를 요구하는 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막기 위해서다.

테런스 오쇼너시 미국 북부사령관 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사령관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생산과 실전 배치가 임박했으며 미국 본토 공격용이라고 했다. 3일 미국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 전략군 소위원회가 주최한 미사일 방어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다. 아울러 증인으로 참석한 새뮤얼 그리브스 미사일방어청(MDA) 청장은 북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처럼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고도 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다. 북이 일반적으로 벌이는 전략적 군사활동에 대한 서술이어서다. 그럼에도 눈 여겨 볼 만하다. 현 시기 북미협상을 중심에 놓고 전개되고 있는 북미대결전에서 미국이 북의 군사무기에 대한 우려를 유독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협상의 내용이 될 수 없는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폐기를 요구했던 조류와 궤를 같이 하는 흐름이다. 미국 내 전쟁세력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반대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여론전의 일환으로 보인다.

북미협상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문제는 미국 내의 전쟁세력들이다. 북의 북미협상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전환과 한반도 평화 구축 그리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 내의 전쟁세력을 약화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정을 실현하며 더 나아가 세계 평화애호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반제평화전략으로 명명되고 있다. 미국 내의 전쟁세력들은 북미협상에서 북의 무장해제를 강조하고 있다. 대북제제의 해제의 조건으로 비핵화에서 더해 군사무기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탁에 오른 존 볼튼 백악관 안보 보좌관의 빅딜문서 이른바, 노란 봉투에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폐기가 포함돼 있는 것에서 그리고 미군 수뇌들이 북의 ICBM과 SLBM 그리고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언급하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 전쟁세력들이 북미협상을 통해 북의 무장해제를 강조하는 것은 6.12북미공동성명이 합의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깨는 것을 종국적인 목적으로 한다.

북미대결에는 북미협상이 없으며 북미협상에는 북미대결이 있다.

북미대결전은 북미대결과 북미협상으로 구성된다. 북미대결은 북과 미국 내 전쟁세력들이 전개하는 북미대결전이며 북미협상은 북과 미국 내 평화세력이 전개하는 북미대결전이다. 북미대결은 미 전체가 북 전체와 격돌하는 강 대 강 대결로서 또렷하면서도 간결한 양상을 띤다. 하지만 북미협상은 복잡하다. 북과 미 평화세력 간의 대화이되 여기에 미국 내 전쟁세력이 개입해드는 양상을 띠는 것이 북미협상인 것이다. 북미대결은 북미협상 없이 진행되지만 북미협상은 그 안에 북미대결을 동반하는 이유다.

기간 북미대결전에서 역사적인 북미협상은 세 번 있었다. 94년 제네바 합의와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께 그리고 2005년 9.19공동성명 등이다. 그 북미협상들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다. 다 북의 핵미사일 연구.개발이 마련한 것들이었다. 북이 핵미사일 연구.개발을 하자 미국이 불려나왔던 것이다.

세 번에 걸친 전략적 북미협상은 북미관계 정상화를 성과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그러나 다 파기되고 말았다. 미국은 그 책임을 북에게로 돌렸지만 거짓말이다. 세 번에 걸친 전략적 북미협상을 깬 것은 미 전쟁세력이었다. 미 전쟁세력이 북미협상에 어떻게 개입하고 어떻게 결렬시키는 지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가장 쉬운 사례로 70년 대 말 카터의 주한미군철군 철회 과정을 들 수가 있다.

주한미군철군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카터는 1977년 취임 직후 군에 철군방안 검토를 지시한다. 북미관계 정상화로 이어질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전쟁세력들은 대선 전 부터 작전에 돌입했다. 미 전쟁세력의 중심부에 있었던 스탠스필드 터너 CIA국장이 대북정보 특별팀을 꾸린 것이 핵심이었다. 육군 특별조사대 소속된 대북 정보담당관 존 암스트롱을 앞세웠다. 2년여 활동 끝에 암스트롱 보고서가 1978년에 완성됐다. 사단 숫자가 알려진 28개가 아니라 41개이며 지상군 숫자도 최대 65만명에 달할 뿐 만 아니라 탱크 수도 당초 알려진 것 보다 80% 이상이나 많고 새로운 탱크 사단도 존재한다는 것 등이 주 내용이었다. 남북 군사력이 균형을 이뤘다는 기존 미 정보기관의 평가를 뒤엎는 보고서였다. 주한미군철군론자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심각한 파장을 낳을 심각한 보고서”라며 탄식을 했다. 카터의 철군론의 근거를 흔들어버리는 보고서였던 것이다. 미 전쟁세력은 한발 더 나아간다. 1979년 1월 ‘아미 타임스(The Army Times)’라는 국방전문지에 암스트롱 보고서 내용을 누출했다. 미 전쟁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주류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한 것은 미리 정해진 수순이었다. 카터는 결국 1979년 2월 9일 철군 보류결정을 하는 것으로 주한미군철군을 철회하고 만다.

북이 핵무력 완성 이후에 마련하고 있는 북미협상은 불가역적이다.

북은 핵.미사일 개발.연구로 미국에 세 번에 걸쳐 강제했던 북미협상이 미 전쟁세력에 막혀 깨지고 말자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핵.미사일 전략을 개발.연구에서 생산.배치로 바꾼 것이다. 그 역사적 전환이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이다. 북미협상은 곧바로 열렸다. 현 시기 북미협상은 북의 원자탄과 수소탄 그리고 ICBM과 SLBM 등 북의 핵무력 완성이 불러온 판인 셈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폐기 문제가 억지로 오르고 이어 미군 수뇌들이 북의 ICBM과 SLBM 그리고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언급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북미협상이 핵무력 완성으로 새롭게 꾸려졌음에도 미 전쟁세력의 북미협상에 대한 개입은 여전이 활발하다.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세계의 정세분석가들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과정에 큰 역할을 한 볼턴에게서 카터의 주한미군철군론이 철회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터너 CIA국장을 떠올렸다. 아울러 볼턴이 들고 있던 노란 봉투에서는 터너 국장이 대북정보 특별팀에게서 건네받았던 암스트롱 보고서도 떠올렸다.

북미협상을 깨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방해하려는 미국 내 전쟁세력들의 음모적 행태는 하지만 이제 와서는 오래 갈 것이 못된다. 현 시기 북미협상은 핵미사일 연구.개발이 아니라 핵무력 완성이 마련해준 판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의 전쟁세력들이 그리하고 있듯 이런 저런 방해는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력한 반발일 뿐이다. 지금의 북미협상은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가 없으며 엎을 수는 더 더욱이나 없다. 현시기 북미협상이 갖는 특성인 불가역성이다. 이런 저런 곡절과 난관이 있기는 할 것이지만 북의 반제평화전략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북미관게 수립이라는 시대적 요구는 이후 북미협상에 의해 실현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성 자주통일연구소 소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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