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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교예>를 보고 싶다<조선, 예술로 읽다> 저자 이철주를 만나다

민플러스에서 그 동안 연재했던 <조선, 예술로 읽다>가 책으로 나왔다. 이철주 저자를 만나보았다. 책에 대한 이야기, 남북문화예술 교류이야기 등등을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대담 : 김장호 편집국장
사진 : 선현희 기자

▲ <조선, 예술로 읽다> 이철주 저자

- 북을 예술을 통해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북과 남의 관계가 주로 정치, 외교, 군사 중심으로 이루어졌죠. 그거는 전제조건이 체제와 국가, 정부 대 정부, 상당히 건조한 거죠. 딱딱하고. 그러한 것이 민까지 오면은 상당히 거리감이 있습니다. 북쪽의 여론과 우리쪽 여론이 있을텐데 민 대 민의 만남은 거의 없는 거죠.
문화예술 같은 경우는 사람과 사람의 교류잖아요. 거기서 감정이 생기고 인연이 생기고 더 발전하면 연대가 되는 거죠. 그 속에서 사람이 좋은 감정이 있으면 사상이나 레드컴플렉스를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게되는 거죠. 그럼 이해의 폭이 넚어집니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민족감이라는 것이 생기게 될 겁니다. 그 민족감이라는 바탕위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 것인가. 뭐가 달라졌을까 이렇게 가는 것이 선순환 구조라고 보는데, 거기서 가장 큰 매개가 바로 계기가 예술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 조선의 눈으로 조선의 예술을 이해하자는 주장이신데요. 방법론상 어던 장점이 있습니까?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역지사지죠. 다른 시선, 예를 들어 제3자적 시선으로 볼 경우 객관성은 있죠. 그런데 제3자 시선은 남북관계에서 대단히 합리적이거나 합목적적이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조선은 하나다’라는 연주곡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통일노래입니다. 그 가사를 보거나 배경을 보면, 우리 국민들 정서, 레드콤플렉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서에서 보면 적화통일론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근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도 어쨌든 통일을 노래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해가 달라지는 거죠. 통일의 방법론으로 가면 정치적 문제가 될테네 에술로 보면 “그들도 통일을 노래한다”는 것이고, 이게 중요한 거죠.

또 하나 예를 들면, 북이 미사일을 쏘고 광명성을 띄우고, 갑자기 핵병진노선을 하니까 보수쪽에서는 이상한 쪽으로 북이 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북측의 우표를 쭉 살펴보면 7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미사일우주항공 관련 우표가 매년 나왔어요. 이 얘기는 북은 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출 때부터 우주항공사업을 최고의 국가목표로 잡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면 우리 입장이 얼마나 편협하고 잘못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거죠.

북을 바로 안다는 것이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구나’부터 출발해야 그다음에 ‘뭐가 다르지?’, ‘뭐가 동질성이 있지?’ 여기서부터 우리가 ‘뭐가 하나되지?’ 이렇게 갈 수 있는 시작이라는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와 달리 북의 관점에서 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북의 정치적 입장에서 북의 예술을 들여다보고 이해하자는 취지입니다.“

- 우리 눈으로만 북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는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취지군요.

”그렇죠. 남북관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통일학술연구모임에서도 ‘통일번역’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같은 말을 쓰더라도 다르게 해석이 되는 거거든요. 북의 입장과 북의 기본 관점이라는게 있는데 우리는 우리 관점이나 국제적 관점으로 북을 재단하거나 이해하고 해석을 하다 보니까 간극이 생긴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 예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겁니다.“

- 조선의 예술을 이해하는데서 특별히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떠한 것들이 있겠습니까?

”북의 기본적인 문구가 ‘민족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다’는 겁니다. 이거는 모든 예술에 다 적용이 되는 기본적인 명제입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보여주었나 하면 세계화로 가고 있는 거예요.“

- 세계화요?

”조선예술이 아이덴터티, 자기만의 예술이라는 독창성을 갖게 된 거죠. 풀어 이야기하면 우리는 무형문화재 같은 전통예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킨다는 것은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는 거죠. 그런데 일각에서는 한국 음악의 세계화를 이야기합니다. 살사, 탱고 이런 게 세계화된 음악 아닙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성공한 케이스가 없죠. 그런데 북은 일찍부터 서양음계를 받아들여서 배합관현악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악기를 개량하, 몇 십년에 걸친 과정을 통해서 오케스트라에 민족악기가 들어가고 민족적 선율이 들어갑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는 락밴드라 할 수 있는 보천보 전자악단 같은 경우 신디사이저를 기본으로 하는 락밴드를 가져 가지만 그 안에 민족적 선율을 담아서 조선식 우리 음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술에서는 유화적인 장점을 받아들여서, 한국화, 동양화와 결합시켜 ‘조선화’라는 특이한 양식을 만들죠. 이런 식으로 주어진 조건하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예술성을 갖는 것. 이것을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현대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이 아이덴터티 싸움입니다. 작가주의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는데, 자기의 예술적 고유성을 가지고 세계와 싸우는 거예요. 저는 우리가 가장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뭐 문체부가 계속 세계화, 월드음악을 지원하고 하지만 가장 가까운 북에서 배워봐라. 저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거죠.“

- 요즘 남측에서는 한류가 세계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한류는 예술적 완성의 측면보다 대중음악이라고 봅니다. 대중음악도 예술적 영역으로 두기는 하나, 우리가 말하는 한류는 일차적으로 케이팝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케이팝은 대단히 상업적인 영역입니다. 일본, 서구의 것이 한국의 예술적 재능, 정책적 지원과 만나서 시대적 환경속에서 꽃을 피운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적 고유의 본질, 예술로서의 핵, 종자를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 한류가 세계적인 장르와 한국적인 정서랑 연결되는 지점이 전혀 없는 건가요?

”방탄소년단이 오고무를 추었다고 해서 그들의 노래가 우리의 예술을 노래했다, 민족성을 담아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잖아요. 민족성이 세계화된 점을 놓고 본다면 우리 음악이 세계화되었다기 세계화를 수용했다고 볼 수 있겠죠. 일종의 웨이브인데요. 한국적 웨이브, 즉 물결입니다. 그런데 물결이 바다는 아니거든요. 당대의 시대적 유행이죠. 만약 정말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예술적 장르화가 되어야 한다면 아프리카 리듬이 고유명을 받으면서 예술적 장르로 인정받는 과정과 같은 것이 있어야겠죠. 살사. 탱고 이런 거는 민족적인 것, 즉 포크음악이 보편성을 확보한 겁니다. 이렇게 보면 한류음악이 아직 보편성을 확보한 거는 아니죠. 열광과 팬심과 주목도는 받았을망정 세계 예술사속에서 보편성을 인정받으면서 하나의 장르로 성공한 것은 아직 아니죠. 물론 개인적으로 그래주기를 바라지만, 그 음악의 특성상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한류는 기본적으로는 팝음악이잖아요. 팝이면 본고장이 어디입니까? 미국입니다. 빌보드 차트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는 판에 우리가 본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색적이고 순간적인 대중적 주목을 폭발적으로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민족성을 담보한 우리 예술의 하나의 장르다. 이렇게 보기는 어려운 거죠.“

- 조선예술은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이 책에서 특별히 강조해서 소개한 대목은 무엇인가요? 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해 주시죠.

”제목이 <조선, 예술로 읽다>인데요. 예술로서 북을 쉽고 편하게 이해하자는 겁니다. 북은 예술이 인민과 연결된 측면이 하나 있고, 또 하나가 국가와 연결된 부분이 있어요. 국가와 연결된 부분을 쉽게 이야기하면 ‘음악정치’입니다. 북은 전대 지도자, 현 지도자까지 예술, 즉 음악을 무기로 해서 고난의 행군에서부터 현재까지 끌어가고 있단 말이죠. 거기서 수령제가 뭔지. 당성은 어떻게 관철하는 건지. 국가체계가 어떤 체계로 형성되고, 유지되고 미래를 지향하는 건지를 음악을 통해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것이 회고음악회라든가, 모란봉 악단이라든가. 이런 것에서 다 드러나는 거죠. 그런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삼지연 관현악단 강릉 서울 공연입니다. 거기서 ‘음악가의 음악가’라고 말 할 수 있는 장용식 지휘자를 내세워서 레파토리를 기막히게 짭니다. 특히나 연목을 보면 한국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조선으로 끝납니다. 메들리연주는 전 세계를 다 돌고나서 마지막에 빛나는 조국으로 끝나요. 이런 거는 철저히 계산하지 않고는 되지 않는 거거든요. 동시에 가사를 다 양보했잖아요. 북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사인데, 가사를 양보했다는 거는 지도자의 결심없이는 안되는 겁니다. 이걸 통해서도 북은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거죠. 비록 하나의 사례지만 이런 것들이 모아지면 예술을 통해서 정치적 합의를 일궈낼 수 있다는 거죠.

또 하나가 인민과 연결되는 부분인데요. 북의 노래는 혁명가요. 생활가요 등등이 있습니다. 생활가요 면에서 보면, 우리는 그들을 아주 어렵게 산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려운 조건속에서 나름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군중무용을 보아도 그렇죠. 네팔 같은 경우 경제력은 낮지만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것이 사회적 합의라고 봐요. 그러한 예술적 풍토속에서 당과 수령과 선군도 있겠지만 거기도 사람사는 세상이니 그에 걸맞는 에술적 행복을 누리고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생활가요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박물관도 있고, 곱등어 놀이동산도 있는 거죠. 그런 면을 들여다보며 북도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북도 통일을 노래하고 있는데, 북측도 통일음악을 만들고 있고 통일에술을 지향하고 있고, 끊임없는 메시지를 에술을 통해 발신합니다. 그런 면을 북예술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북 예술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지도자의 이야기가 바로미터죠. 지도자는 세계화를 천명하였습니다. ‘사회주의 문명강국’, ‘세계화’, ‘명작폭포’ 이것이 다 같은 맥락의 말들입니다. 지금까지 약 70년간 만들어온 주체예술을 예술적 완성도를 가지고 세계로 나가자.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여주자. 인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자. 이것이 북 예술의 방향이라고 봅니다. 거기서 남북교류의 큰 접점도 있다고 봅니다.”

- 남북예술 교류의 접점과 통일예술에 대한 견해도 말씀해 주시죠.

“지금 무수히 많은 예술단체가 북에 사회문화예술교류를 제안했는데, 지금까지 한 건도 진행된 것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남측이 2007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9년간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북은 많이 바뀌었고, 바뀐 다음에 다시 만나려고 보니까 과거 입장과 달리 북은 세계화에 관심이 있는 거예요. 이벤트성 보다는 세계화와 지속가능한 개발쪽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최근 교류하고 만나고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북의 현 지도자가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 문화재, 문화유산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죠. 이 분야에서 큰 접점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민간에서 하기가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좀 특정한 영역잊. 민간이 같이할 수 문화예술 접점은 ‘세계화 과정을 같이 밟아 나가자’는 거죠. 과거 뉴욕필 공연이 큰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에 못지않은 화제성 있는 공연을 준비해야 하구요.

또 저는 지속적으로 ‘춘향교예’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는데요. 2008년도 금강산에 나와있던 교예단이 모란봉 교예단입니다. 그 당시 어떤 이야기가 있었냐면 모란봉 교예단을 태양의 서커스같은 세계적인 컨텐츠로 만들자는 논의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있었어요. 교예는 결국 테크놀로지보다는 교예인들의 재능과 기술력입니다. 북은 워낙 체계적인 교육을 시켜서 교예들의 수준이 정말 세계적입니다. 3대 국제 교예콩쿨을 다 석권했어요. 북의 공중교예는 세계초특급입니다. 그런 인재를 가지고 있으니까 여기에 서구의 기술력을 결합시켜서, 우리는 그것을 크리닉 한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결합을 시키면 정말 세계적인 공연이 나오는 거죠. 외국인들이 기적같다는 공연이 ‘아리랑’이죠. 이번에는 ‘빛나는 조국’이었죠. 그거는 너무 스케일이 크니까 투어를 할 수 없잖아요? 제재국면이 북 들어가기도 어렵고.

그런데 교예단 하나를 상품화시켜서 전세계를 투어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뉴욕 필 하모니 지휘자 로린 마젤이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세계적인 A급 교향악단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탑클라스라는 거죠. 이게 뭐냐면 북이 예술을 가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거죠. 이런 부분에서 뭔가 좀 남측의 마케팅력이라든가, 자본력이라든가 이런 것 또는 테크놀로지와 관련 부분, 세련된 연출력, 기술력 등등이 북과 결합했을 때 정말 시너지가 날 겁니다. 그래서 춘향교예가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내부적 시금석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춘향교예는 뭐죠?

“교예극인데 춘향전을 가지고 만든 교예죠. 교예는 종류가 많습니다. 빙상교예, 수상교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서커스같은 교예. 춘향교예는 춘향전 스토리를 교예극으로 만들었어요. 저도 문헌으로만 접했는데 빨리 보고 싶습니다.

또 북에는 무용음악조곡이라는 장르가 있는데요. 무용음악이야기라는 거죠. 이걸 영어로 표현하면 그냥 댄스 뮤지컬입니다. 스토리가 있는데 이걸 춤으로 다 하는 겁니다. 방창이라고 뒤에서 노래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넌버벌 아트입니다. 세계적 보편적으로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이런 훌륭한 음악인들이 전세계를 투어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조선춤은 정말 훌륭하거든요. 오히려 우리나라 작품이 전세계를 투어한 경험은 없습니다. 순수한 자신의 창작품으로. 이렇게 보면 북이 더 빨리 될 것 같아요. 방창같은 가사가 있는 것은 무대연출에서 자막처리해도 되고요. 유려하고 완성도 높은 음악, 최승희로 대표되는 북측의 조선춤, 전세계를 최승희가 사로잡았던 경험이 있잖아요. 그 후예들이 추는 조선춤을 가지고 넌버벌퍼포먼스 댄스 뮤지컬을 만들면 충분히 대답이 된다고 봐요.”

- 문화기획자이고, 남북예술교류와 관련한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기억할만한 활동이 있다면?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평양조선미술박물관 내한전’과 평양민족예술단의 ‘민족가극 춘향전의 내한공연’ 건이었어요. 2007년 11월 달에 북경에서 사인을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와서 완전히 막혔죠. 조선미술박물관은 수장고를 현대화시켜주겠다는 조건으로 작품을 들여오는 거였고, 부대사업으로 대동강 남측에서 북측 미술가 50명 남측 미술가 50명 사생대회를 해서 교환전시까지 하자는 것을 합의했던 내용입니다. 상당히 아쉬웠던 기획이었죠. 북측 현대미술관을 수장고 까지 들어가서 같이 연구까지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는데, 정치적 이유로 막히고 말았습니다.”
※ 수장고 :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

“북측 무대예술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은 결국 가극입니다. 가극은 남쪽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는데, 춘향전은 보편적인 내용이고 계급만 약간 다른데, 그것이 온다면 북측 예술, 종합예술을 그대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것도 막힌 게 아쉬웠구요. 그게 왔으면 북측 무대예술을 전반적으로 다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안되었습니다.

성사된 것 중에서는 금강산 가극단 무용부가 와서 2007년 ‘조선무용50년, 북녘의 명무’라는 무용공연을 했었습니다. 금강산 가극단도 무용만 가지고 공연을 짠 것은 최초였습니다. 동경에 가서 귀한공연을 할 정도로 절찬을 받았습니다. 그 공연은 처음에 우리나라 외교부가 고향방문단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연기가 되었다가 어렵게 성사된 공연이었습니다. 북측 대표적인무용들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민족예술사, 한반도 무용사에서는 아주 의미있는 공연이었습니다.
음악같은 경우 음원이 있으면 들으면 됩니다. 그런데 무용은 동영상으로 보면 평면이기 때문에 이해가 안됩니다. 무용은 무대에서 사라지는 예술이기 때문에 친견이 중요합니다. 그때가 최초였죠. 지금도 금강산 가극단 무용부와는 2회 공연을 계속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실현을 못 시키고 있는데 4.27시대가 오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앞으로 활동계획이 있다면?

“활동계획은 많은데 정부정책이 관주도로 가고 있잖아요? 미국눈치도 봐야하는 상황이고,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가장 가슴아픈 거는 정부 대 정부가 하는 문화예술교류는 대단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나라를 대표해야 하고, 여러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하고 국제적, 외교적 고려도 해야하기 때문이죠. 민간은 좀 더 가볍거든요. 좀 더 친숙한 레파토리를 구성할 수 있구요. 관주도가 아니라 최소한 민관으로 가면서, 일정 영역은 민간에 넘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조선무용 50년 북녘의 명무’ 같은 것도 또 하고 싶고요.

제일 급하게 성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연하나가 통일노래꾼들의 평양공연입니다. 지난 번에 삼지연 서울공연에 대한 화답으로 평양에서도 공연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때 아마 방송을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객석의 표정이 그렇게 썩 밝고 긍정적이고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예술가들의 얼굴을 알잖아요. 만수대예술단부터 청봉, 모란봉 다 있었죠. 정말 성공한 공연인가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노래에서 북의 대중가요는 가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북 무대예술에서 표정연기도 중요한데 표정연기는 진정성을 전달함에 있어서 연기로서 한계가 있습니다. 역시 가사입니다.

그럼 무엇인가. 어두웠던 9년 동안 통일을 노래했던 분들이 꽤 많습니다. 저는 이분들이 가서 이분들이 가슴에 담았던 절절한 호소를 노래로 가서 북의 인민들은 만날 때 4.27시대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가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런 거는 이거를 정부가 기획할 리는 없잖아요. 저는 이 건에 대해 기획중이고 북에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통일노래꾼들이 평양에서 하는 공연, 가장 희망하는 것은 대동강 수변무대를 만들어서 공원에서 많은 인민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송년음악회를 유뷰브에서 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무대 4면을 다 썼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송도 락페스티발 같은 아주 큰 무대에서 씀직한 트러스나 조명장비가 나왔는데, 아주 현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큰 공연을 가지고 가도 북의 무대제작시스템이 받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겁니다. 이제 좋은 컨텐츠만 가면 됩니다.”


- <조선, 예술로 읽다>를 읽어야 할 이유를 한 마디로 하면?

“북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보십시오.(웃음)
극한직업에서 “이보다 더한 맛은 없다”고 했던가요?(또 웃음)
새로운 정보를 많이 담았습니다. 북측 관계자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통해서 속 깊은 이야기들, 낯설지만 인간미가 있는 이야기들도 많이 넣었습니다. 보시는데 큰 부담은 없을 겁니다.“

김장호 기자  jangkim21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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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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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현 2019-03-15 20:03:23

    이철주 선생님의 메아리를 들으며 우리가 왜 예술로서 북을 만나야 하는지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아직 읽지 목했으나 책도 꼭 보겠습니다.   삭제

    • 박혜연 2019-03-15 15:05:40

      어쨌거나 이철주님~!!!! 이명바끄네시절 잊어버리시고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많이하세용~!!!! ^^   삭제

      • 박혜연 2019-03-15 15:04:49

        왕재산경음악단이나 보천보전자악단은 다 알다시피 북한 최초의 대중음악밴드인건 모르는사람들이 없죠~!!!! 한마디로 우리식 전자음악 그전에는 대중음악을 하는 북한밴드는 아얘없다고봐도 무방하고요~!!!! 유튜브로 봤듯이 왕재산이나 보천보소속 여가수들은 종전 북한여가수들에서는 볼수없는 서구식 드레스를 입고했으니깐요~!!!! 특히 왕재산경음악단은 무용수들의 노출의상과 춤으로도 유명하지만요~!!!!   삭제

        • 박혜연 2019-03-15 15:00:01

          이철주님~!!!! 저도 춘향교예가 너무너무 좋아용~!!!!!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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