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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동의 신간서평]길몽과 악몽 사이<말과 칼_두 가지 한국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

말과 칼_두 가지 한국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 

지은이 정욱식 / 출판사 유리창 / 정가ㅣ14,000원

평화운동가 정욱식의 상상력

대선을 앞두고 유행처럼 출간되는 책들이 있다. 앞으로 전개될 대선과정과 결과를 예측하는 책이다. 대선이란 한마디로 나라의 운영을 걸고 벌이는 판돈 큰 ‘노름판’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대중의 흥미를 끌기 딱 좋은 소재다. 판이 이러니 다종다양한 음모나 술수도 난무하기 마련이어서 읽는 재미 역시 딱이다. 게다가, 어쩌다 예측 하나만 맞아떨어져도 족집게라는 둥 어쩌구 해서 기삿거리가 되고, 그것은 또 판매와도 직결되니 가뜩이나 ‘단군 이래 최대 불황’ 어쩌구 하는 출판사로서는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내년이 대선이니 슬슬 이런 책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17년 대선과 대선 이후의 상황을 다룬 소설이 나왔다고 해서 실실 웃었다. 예상이 맞아떨어졌을 때의 쾌감 같은 것이다. 이번엔 또 어떤 구라쟁이가 뭐라고 야부리를 깠을까.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지은이의 이름을 보고 고개부터 갸웃거렸다. 정욱식이라면 평화활동가로 청춘을 고스란히 불살라버린 친구다. 나랑은 이웃동네에 살아서 가끔씩 휴일엔 공을 차고 밥을 먹기도 하는데, 사석에서 그의 입담은 가볍고 유쾌하지만 글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당장 인터넷으로 그가 신문에 기고한 글들은 찾아보거나,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늦둥이 딸내미 얘기는 하나도 없고, 온통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얘기로 도배를 했다. 그것도 하나같이 무겁고 진지하다. 그런 그가 2017년 대선 예측서를 쓰지 말란 법은 없지만, 소설이라니 기이하기 짝이 없는 얘기다. 그래서 더 구미가 당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평화냐 전쟁이냐

2017년 대선에 여당에서는 손시열이, 야당에서는 최서희가 후보로 출마했다. 여당 후보는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를 비롯해 독자적 핵무장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야당 후보는 우선 북한과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시도한 후 여의치 않을 경우 사드 배치를 검토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지난 여러 차례 대선 경험으로 보아 공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아무튼 이 책은 이런 공약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여당의 손시열 후보가 당선되었을 경우 벌어지게 될 일들을 ‘헬조선 편’으로, 야당의 최서희 후보가 당선되었을 경우를 ‘웰조선 편’으로 나누어 책을 구성했다. 앞에서부터 읽으면 ‘웰조선 편’이, 뒤에서부터 읽으면 ‘헬조선 편’이 펼쳐지는, 아니 애초부터 앞뒤란 것조차 없어서 어느 쪽부터 읽어도 상관없는 야릇한 구조다.

이미 눈치 챈 분들도 있겠지만, 여당의 손시열은 조선시대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노론의 영수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송시열에서, 야당의 최서희는 고려시대 거란족과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회복한 서희에게서 따왔다. 주인공의 이름부터 묘한 복선을 풍기지만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까지 보태는 일은 일단 보류다. 쓸 데 없이 원고 매수나 늘이는 일일 테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손시열과 서희는 현실과 다르게 공약에 충실하다. 손시열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 하고 여기에 독자적인 핵무장을 진행한다. 핵무장을 할 수 없다면 미국의 전술핵무기 한반도에 재배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 서희는 북한을 비롯해 중국과 미국을 특사로 보내 한반도 평화 의지를 전달하고 조율한다. 그리고 마침내 남북과 북미의 정상회담을 이끌어낸다.

차 떼고 포 떼고 줄거리를 요약하니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한 뼈대만 남지만, 이 일련의 진행과정 속에 평화활동가요 안보전문가로서 정욱식의 식견과 통찰과 혜안이 빛난다. 각 상황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반응과 대응, 우리 청와대와 국방부의 방어와 공격까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명확한 상황판단과 그동안 펼쳐진 협상의 역사를 꿰뚫지 않고서는 기술할 수 없는 정욱식만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사드 배치 결정, 헬조선의 시작인가

이 책은, 그래서 소설이 아니다. 작가 자신도 ‘세미 픽션_Semi Fiction’이거나 ‘소셜 픽션_Social Fiction’이라고 규정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이런저런 이론과 논문들을 끌어다대며 평화와 안보를 역설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독자들에게 소설이라는 당의정을 입힌 또 하나의 한반도 정세 분석서인 것이다. 마치 ‘이래도 안 읽을래!’ 라며 호소라도 하듯이.

“단체 활동을 하면서 간간히 써온 책이 벌써 10권을 훌쩍 넘겼다. 분류하자면 모두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다. 대부분 존재감이 별로 없는 책들이다. 사람들이 좀 더 재밌고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없을까? 소설이 떠올랐지만, 이건 내 능력 밖이었다. 그래서 독특한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웰조선 편 164쪽, 헬조선 편 123쪽을 통틀어 이 책에서 내게 가장 가슴 아프게 와 닿았던 대목은, 북한이 개성공단을 향해 군 장비를 이동하고 일본이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자위대 파견을 통보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아니었다. 피를 찍어 글을 쓰는데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 존재감 없는 책을 만드는 저자의 심정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고는 하지만 길은 책에 있다.

정부는 지난 6일 사드 배치를 최종 결정했다. 경북 성주에 배치하겠다는 발표도 끝났다.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이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이런 결정에 관해 단 한 번도 국민과 소통한 일이 없었다. 북한은 물론이거니와 중국과 러시아도 연일 우려를 표시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예견된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되는 일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하는 결정이라면 우리 땅 안에서의 평화부터 챙겨야 했을 일이다. 벌써부터 찬성과 반대를 둘러싸고 나라가 들끓고, 사드 배치가 결정된 지역 주민들은 혈서로 플래카드를 만들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 대목에서 한번 물어보자. 누구를 위한 사드인가. 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이 책 <말과 칼_두 가지 한국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에 들어있다. 헬조선은 막아야지 않겠나.

 

정욱식 평화활동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대기군과 남한의 IMF 경제위기를 목도하면서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 운동과 연구를 시작,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했다.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을 운영 중이며, 김종대 정의당 의원,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과 함께 팟캐스트 ‘진짜 안보’를 진행하고 있다.

<MD 본색>,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 안보>, <핵의 세계사>,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가짜 안보>, <글로벌 아마겟돈 핵무기와 NPT>, <21세기 한미동맹은 어디로>,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 등의 저서가 있다.

 

이규동 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편집주간

이규동 주간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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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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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상열 2016-07-14 19:24:17

    민심을 껴 안는것은 무형의 성이요!
    성벽을 높이는것은 유형의 성이다!
    -정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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