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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수중개발 정호원 부사장의 법정 증언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에 대하여 ④
  •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 승인 2018.12.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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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12일 함미 저수심 이동 및 그 이후의 정황과 관련하여 2017년 11월14일 항소심 제8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의 증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8수중개발측은 체인을 3개까지 걸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나 군 당국은 “한 가닥 더 감으라”는 요구를 거두지 않았으며 “작업자들의 핸드폰을 압수하고 서약서까지 쓰게 하여 충돌이 있었다”고 정 부사장은 증언합니다.

그리고 정 부사장은 체인 세 가닥 관련 심재환 변호인의 질문에 대해 “인양할 때는 짝수로 한다. 홀수로는 하지 않는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군 당국이 이동을 요구한 지점은 공교롭게도 문제의 ‘제3의 부표’ 위치 방향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저수심 쪽으로 4.6km 이동한다고 발표하여 기존에 KBS에서 특종보도한 ‘제3의 부표’ 논란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함미-제3의 부표’ 사이의 거리인 6km와는 1.4km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신문이 있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크레인이 함미를 매달고 이동한 저수심 지역이 ‘용트림 바위’ 인근인지 여부였습니다. 그 인근 지역에 크레인이 머문다는 것은 분명 ‘제3의 부표’ 아래에 침몰한 대형구조물 인양과 관련이 있다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김종귀 변호인과 제가 정 부사장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정호원 부사장의 증언은 ‘용트림 바위 근처’, 즉 KBS에서 보도한 ‘제3의 부표’가 있는 위치와 거의 일치하였습니다. 심지어 ‘1마일 이내... 수영가능한 거리’라며 그곳이 용트림 바위 쪽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군 당국은 함미를 크레인에 매달고 ‘제3의 부표’ 인근으로 이동시킨 것입니다. 그곳에 함미를 다시 내려놓고 모종의 작업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4월14일 미7함대의 작업(잠수함 인양)을 하루 앞 둔 4월13일 88수중개발 등 현장 작업자들에 대해 현장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미7함대의 특수한 작업이 외부인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우려한 군 당국은 ‘기상 악화’를 이유로 현장 작업자들에게 외부로 나갈 것을 요구하였고 이데 대해 작업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88수중개발 작업자들은 날씨가 좋든 나쁘든, 작업을 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배에 있으면 되지 왜 나가라고 하느냐며 불만의 목소리를 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배에 있는 것이 편하고 막상 대청도로 나가봤자 숙박시설도 시원치 않고 왔다갔다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작업자들이 원하는 것은 빨리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것이었는데 겨우 ‘너울’ 수준의 해상 상태에 ‘기상 악화’를 이유로 작업을 중단시키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 작업자들 핸드폰을 모두 압수한 상태여서 가족들과 연락하는 것조차 현장의 장교들 폰을 빌려 쓰라고 하는 등 현장 작업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는 증언도 하였습니다.

당시 해상 상태는 너울(‘노을’은 오기)이 있는 상태였으며 정호원 부사장은 “이것보다 더한 날도 배에 있으라고 해놓고 왜 섬에 들어가라고 하나. 집에 늦게 가게”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당시의 해상 상태가 어떠했는지는 미7함대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美7함대 홈페이지 2010. 4. 14 당일 작업내용

당시 현장에는 누가 남아 있었는지 작년 항소심 8차공판(2017년 11월14일)에서 윤준 재판장께서 정호원 증인에게 물었습니다.

정호원 증인은 현장에서 작업하던 잠수사, 작업자, 보조사, 장비 컴프(컴프레샤, 압축공기) 다루는 사람들은 모두 철수하였다고 하였으며, 현장에는 크레인 운영 선원들과 필수 요원만 있었다고 답하였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1심에서 88수중개발 권만식 소장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권만식 소장은 대부분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해 사실관계를 전혀 확인할 수가 없어 우리측에서 정호원 부사장을 추가 증인으로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권 소장이 그나마 답변한 내용 가운데 <현장에 군인들과 크레인 기사만 남아 있었다>고 증언한 사실이 있어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정호원 부사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2010년 4월14일. 그날 미7함대는 ‘제3의 부표’ 지점에서 하루 종일 모종의 작업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에는 군인들과 함미를 매달고 그 위치로 온 크레인 기사만 남고 모두 밖으로 나가도록 요구받았습니다.

한국 인양업체 관계자와 작업자 모두 현장을 떠난 상황에서 유독 미7함대 대원들만 하루 종일 바빴습니다. 의료헬기들이 뜨고 내리기를 반복하였으며 첨단 잠수장비를 갖춘 잠수부들을 단정이 실어 나르는 등 분주한 모습들이 홈페이지에 상세한 설명과 함께 고스란히 올려져 있습니다.

美7함대 홈페이지 2010. 4. 14 당일 작업내용

미7함대가 크레인의 동력을 빌려 해저에서 끌어내야 했던 대형구조물은 바로 천안함과 충돌하여 침몰한 ‘미국 관련 잠수함’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미7함대가 수중에서 어떤 작업을 했을까’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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