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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한국전쟁이 터져주었다”[쿼바디스, 한미동맹](7) 한국전쟁
  • 장창준 정치학박사
  • 승인 2018.11.1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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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군사연습이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신화

훈련(training)과 연습(exercise)은 다르다. 월드컵 축구대표팀은 본선을 대비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연습’ 경기를 갖는다. 연습 경기는 본선과 똑같이 진행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시즌을 마감하면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 전지 ‘훈련’을 떠난다. 전지 훈련에서 선수들은 체력 훈련, 공격 훈련, 수비 훈련 등을 하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선수단이건, 군대이건 역량 강화를 위해 훈련을 실시한다. 이에 비해 연습은 그동안 훈련을 통해 준비된 실전 역량을 점검하는 것이다. 즉 훈련은 통상적인 활동이고, 연습은 실전을 준비하는 활동이다. 한국과 미국이 해마다 몇 차례씩 치르는 대규모 군사적 활동은 훈련이 아니라 연습이다. 즉 북한(조선)과의 실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한국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중단된 상태일 뿐이다. 따라서 한미 군사연습은 중단된 상태에 있는 한국 전쟁의 재발을 상정하고 하는 군사 활동이다. 북한(조선)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북한(조선)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때 한국의 언론은 “통상적인 훈련에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느냐”고 꼬집었다. 한미 군사연습은 통상적인 훈련이 아니다. 실전을 준비한 연습이다.

지난 6월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미 군사연습이 잠정 중단되었다. 간헐적으로 소규모 훈련은 실시되지만 대규모 군사연습은 중단된 상태이다. 지금까지 북한(조선)을 상대로 하는 군사연습을 강화해야 한반도 평화가 도래한다는 것이 하나의 정설처럼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한낱 신화에 불과했음을 2018년은 보여주었다. 군사연습이 중단되어야 평화가 도래한다는 사실을 2018년의 상황은 우리에게 역설한다.

미국은 한국의 은인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

군사연습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또 하나의 신화가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다. 미국이 공산침략으로부터 한국을 구원해주었다는 명제가 그것이다. 이 명제는 지금까지 거부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것이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를 거부하려면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법적으로 제재를 받을 각오를 해야 했다.

미국의 개입으로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미국이 우리의 은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국 전쟁에 참여했을 뿐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도왔지만, 우리의 역사는 명나라를 은인국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비록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은 ‘재조지은’을 역설했지만, 명나라가 임진왜란에 개입한 것은 명나라 자신을 위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NSC-68, 외교적 봉쇄에서 군사적 봉쇄로의 전환

중국 국공내전의 양상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바꿨다는 사실을 지난번에 다룬 바 있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 변화는 곧 냉전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미국과 소련은 결코 협력이 지속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따라서 미국의 정책은 소련을 봉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냉전정책의 시작이었다.

냉전정책의 아버지라고 평가받는 조지 케넌은 1947년 “소련 행동의 원천”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으며, 미국 외교가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는 본질적 적대가 존재한다.

우리는 소련인들이 다루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소련 권력은 그 안에 자멸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이 씨앗이 싹을 틔우는 과정이 착착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지능적이고 원대한 정책이 필요하다.

소련을 파트너가 아닌 경쟁자로 여겨야 한다.

미국은 정당한 확신을 가지고 확고한 봉쇄정책으로 나아가야 마땅하다.

소련에 대한 협력정책에서 벗어나 봉쇄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조지 케넌은 미 국무부의 첫 번째 정책기획실장이 되어 봉쇄정책을 추진해갔다. 1947년 7월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이 제정되었고, 그때까지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육해공군이 통합되었으며, 이들을 통솔할 목적으로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가 창설됐다. 백악관에는 국가안보회의(NSC)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냉전정책은 조지 케넌이 설계한 것보다 더 군사적인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자 미국은 군사작전을 시작했다. 장거리 폭격기를 유럽에 배치하기 시작했고, 확장된 전쟁 억지 개념이 시작되었다. 1949년 대서양동맹이 체결되었으며, 미국의 군부는 전략공군사령부를 설치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NSC에 공산권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나온 문서가 NSC-68이었다. 국방부, 국무부, CIA 외에도 미국의 국가안보와 관련한 부처들이 모여 만든 집체물(group effort)인 NSC-68은 그 이후 20년 동안 미국 냉전정책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문서가 되었다.

분량은 방대했지만 내용은 단순했다. 소련의 팽창 성향이 전지구적이므로 미국과 소련은 충돌이 불가피하고, 소련의 팽창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의 군사력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방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NSC-68이 완성되어 트루먼에게 전달된 시점은 1950년 4월이었다. 보고서를 접한 트루먼은 보류를 지시했다. 당시 미국은 연간 국방비로 130억 달러를 쓰고 있었는데, 국방비를 500억 달러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보고서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트루먼은 이 보고서의 승인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 미국 냉전정책의 기초가 되었던 NSC-68의 표지. 1950년 4월에 거부되었던 이 보고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인 그해 9월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승인되었다.

“감사하게도 한국전쟁이 터져주었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루먼이 NSC-68의 승인을 보류했던 것은 그 정책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부담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은 바로 그 정치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트루먼이 NSC-68을 승인한 것은 1950년 9월이다. 당시 미국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감사하게도, ‘한국전쟁’이 터져주었다.”

NSC-68과 관련한 미국 내에서의 정치적 상황은 한국 방위만이 목적이 아니라 한국전쟁에 개입해야 하는 미국의 국내, 국제정치적 이유가 있었음을 방증한다. NSC-68에 대한 이해관계, 더 포괄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미국의 대외정책이 군사적 봉쇄정책으로 선회하고, 그것을 위해 국방비를 대폭 늘려야 하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에 한국전쟁에 빠르게 개입한 것이다.

한국전쟁 과정을 통해 미국은 군사적 봉쇄로서의 냉전정책을 사실상 완성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미국은 일본이라는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을 갖게 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한국전쟁을 지속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전쟁에서 발을 빼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 되는 시점이 도래했다.

이승만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는, 한국전쟁 시기에도 일치하지 않았다. 미국이 한국을 위해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고? 그것은 냉전시대가 만들어 놓은 신화일 뿐이다.

현대판 ‘재조지은’의 생산자, 유포자들

한국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미국에 비판적인 세력들과 인사들은 한국 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었다. 오로지 미국을 해방군, 은인으로 여기는 사람들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한국 사회는 반공이 지배하고, 친미가 장악했다. 평화와 연공연북, 반미를 외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관계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논리도 한국 사회에서는 수용되지 않았다.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며, 북한(조선)은 영원한 적이라는 비논리가 상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현대판 ‘재조지은’ 논리가 완성된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대판 ‘재조지은’은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 미국은 자기의 이익에 충실한 나라일 뿐이다. 한국을 위해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할 만큼 ‘은혜로운 나라’는 아니다. 미국을 은인으로 떠받들지 않으면, 북한(조선)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산하고 유포시킨 신화에 불과하다.

장창준 정치학박사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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