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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예술로 읽다(4)‘세상에 부럼없다’는 지휘자, 채주혁

매일 아침 일찍 마을의 확성기로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면 동네 아이들은 마을 공터에 모여 국민의례를 하고는, 동네 청소를 나섰다. 일명 ‘애향단’ 활동이다. 정부 권장정책에 따라 점심은 밀가루 음식을 먹어야 했고, 미술수업 시간에는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머리에 뿔난 빨간 도깨비들의 나라인 북한을 타도하고 쳐부수자고 배웠다.

국군의 날에는 카드섹션에 동원되어 땡볕 아래서 연습을 해야 했고, 국가 원수께서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거리로 나가 태극기를 흔들어야 했다. 그 어린 시절 내가 외웠던 시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유일했다. 최근 북한의 인권 실태를, 어린 소녀를 통해 폭로하는 다큐 영화 ‘태양 아래’에 대비해 필자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 것이다.

영화 속의 그 어린 아이가 감독의 주문으로 암송했던 시는 ‘소년단 선서’였다. 국가 원수께서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하는 길에 우연히 화동이라도 되어 가까이 할 수 있다면 집안의 영광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길가로 나섰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아이의 모습이 나와 겹쳐져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전국학생종합예술축전 중에서[사진 출처 : 유튜브]

북측에도 예술영재 교육이 있다. 북에서는 크게 조기교육, 수재교육, 전문교육 과정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특히 예술적 재능을 키우는데 있어 조기교육을 매우 중요시하여, 유치원 특별교육의 형태로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상유치원, 대동문유치원, 오탄유치원, 국제부녀절50주년유치원, 창광유치원 등이 유명하다.

수재교육은 뛰어난 예술적 소질과 재능을 가진 청소년들을 선발하여 키우는 교육으로, 중앙에서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는 방식이다. ‘평양학생소년예술단’ 내한공연으로 알려진 금성학원과 평양예술학원이 정규과정으로는 대표적이다. 수재교육 대상자로 선정되면, 수재교육을 담당하는 평양음악무용대학 특설학부에 입학해 교육을 받게 된다.

예술인 전문교육기관은 크게 중앙기관과 지역별 기관으로 구분된다. 중앙 교육기관으로는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평양무용대학, 평양미술대학, 평양연극영화대학, 인민군예술학원이 있다.

지역 예술교육기관으로 각 도에 예술대학을 설립했는데, 신의주예술대학, 혜산예술대학, 2.16강계예술대학, 청진예술대학, 원산예술대학, 남포예술대학, 개성예술대학, 사리원예술대학 등이 있다.

예술교육기관은 전문학부와 강좌가 개설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재교육과 통신교육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특별하게 선발된 소수의 영재들에 대해서는 전액 국비 지원으로 유학 생활도 보장하고 있다.

▲ 전국학생종합예술축전 중에서[사진 출처 : 유튜브]

정규 과정 외에 사회적 교육과정에는 청소년들의 특별 소조활동을 위한 공간으로서 ‘궁전’이 있다. 대표적인 궁전은 복합문화센터로서 주된 기능을 가진 ‘인민문화궁전’과 ‘학생소년궁전’이 있다.

인민문화궁전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 대한 문화교육센터 기능도 수행하며, 평양에서 펼쳐지는 주요 행사나 집회, 남북회담이나 각종 연회, 전시회, 공연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으로 ‘김일성훈장’(1994년)을 받았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학생소년들에 대한 ‘지덕체 교양의 종합적인 학교’로 과외기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은 과학동, 체육관, 예능동, 수영관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수백여 개의 소조(동아리)실과 활동실, 2000석 규모의 극장과 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 전국학생종합예술축전 중에서[사진 출처 : 유튜브]

이런 예술교육 체제 안에서 성장해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하고 있는 이가 바로 채주혁이다. 채주혁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천재성을 보여주었고, 그의 성장 과정은 북측 영재교육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82년생인 채주혁의 천재성은 4살 때부터 발현되기 시작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박자와 음정이 틀리지 않고 쉽게 따라 불렀던 어린 채주혁의 재능을 지도하던 교양원(유치원 교사)이 발견한 것이다.

노래 수업 중에 “나는야 꽃봉오리”를 따라 부르던 친구의 잘못을 지적한 채주혁에게서 뛰어난 음감을 발견한 교사는 어머니와 상담을 거쳐 채주혁을 음악 영재로 키우게 된다. 예민한 청각과 유연한 손놀림, 풍부한 정서가 남달랐던 채주혁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천재성을 보였다.

▲지휘자 채주혁[사진 출처 : 유튜브 켑처]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즐겨 연주하던 어린 피아니스트 채주혁은 결국 평양예술학원을 거쳐 평양음악무용대학(현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가 지휘자로 진로를 바꾼 계기는 대학시절 만수대예술단의 공연을 보고 나서였다. 1985년 제8회 카라얀 국제지휘자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으로 입상해, 이후 북측 지휘계를 대표해 온 김일진이 지휘한 피아노 2중주와 합창곡 “조선아 너를 빛내리”가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국가의 지원으로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난 18살의 채주혁은 불철주야 학업에 매진하였다. 북측의 지도자가 보내준 피아노로 연습을 하면서, 유럽의 음악축전을 관람하며 꿈을 키우던 채주혁은 결국 지휘자 과정을 최우등으로 마치게 된다.

2005년 4월 젊은 지휘자를 위한 세계적인 콩쿠르인 “덴마크 말코국제지휘콩쿠르 Malko International Conducting Competition”에서 23살의 나이로 입상하여 그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리게 된다.

귀국 후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채주혁이 성가를 더한 계기는 2007년에 있었던 공연이었다. 2월23일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음악당에서 ‘조선국민회결성 90주년음악회’가 열렸다.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서 피아노 2중주와 합창곡 '조선아 너를 빛내리'의 지휘봉을 잡아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지휘자 채주혁이 조선국립교향악단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지휘하고 있다.[사진 출처 : 유튜브]

3월에는 평양체육관에서 국가적 행사로 진행된 예술공연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이 개최되었는데, 그가 지휘한 가야금 병창과 합창 '돈돌라리', 혼성 2중창과 합창 '선군의 나의 조국아'가 호평을 받았다. 특히 공연을 직접 관람했던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지휘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입지를 굳힌 계기는 북측 지휘자들의 통과의례로까지 여겨지는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지휘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대표 레퍼토리이자 북측만의 관현악 양식인 ‘민족배합관현악’의 ‘국보적 명작’인 이 작품은, 지휘자의 기량을 보여주는 바로미터 같은 곡이다. 

수십 년간 국립교향악단에서 기량을 뽐내온 관록 있는 연주자들이 지켜보는 무대에 드디어 ‘새내기’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었다. 주제 선율의 휘모리 장단이 객석을 채우고 발전부의 새납 독주가 멋들어지게 넘어가면서 채주혁 만의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가 탄생한 것이다. 

▲지휘자 채주혁이 조선국립교향악단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지휘하고 있다.

특히 속도를 지키면서도 예비박자와 리듬의 강약을 잘 조절하는 그만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가 되었고, ‘조선장단’의 흥이 리드미컬하게 구현된 지휘는 큰 호평을 받았다. 김정일 위원장 또한 “이 곡의 형상 기준을 새롭게 세워놓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북한판 정명훈으로 알려진 채주혁 지휘자는 국내에서는 ‘아리랑환상곡’의 연주자로 처음 알려졌다. 카라얀처럼 거침없고 역동적인 지휘로도 유명한 채 지휘자는 현재 조선국립교향악단에서 차석 지휘자를 거쳐 부수석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며,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조중합작영화 '평양의 약속' 중에서. [사진 출처 : 유튜브 켑처]

노동당 제7차 군중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꽃다발을 건넨 리진미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태양 아래”를 보고 나서 채주혁 지휘자를 떠올린 것은 바로,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조중합작영화 '평양의 약속' 중에서[사진출처 : 유튜브 켑처]

그래서 아리랑 집단체조공연과 조선무용을 소재로 또 다른 관점에서 제작되어 2012년 상영된 조중합작영화 ‘평양의 약속(平壤之約)’과 비교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관중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영화는 북측의 무용과 음악에 대한 완성도가 높은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다.

* 지휘 채주혁, 연주 조선국립교향악단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 조중합작영화 <평양의 약속>

 

* 이철주 님은 10년 넘게 남북 사회문화교류 영역에서 활동해 온 문화기획자다. 금강산가극단 내한공연 제작, 평양조선국립미술관 내한전 합의, 사할린 남북 해외 청소년 평화미술전 주관, 조선무용50년-북녘의 명무, 철원노동당사 DMZ평화음악회, 조선학교 중등교육 70주년 기념 꽃송이콘서트 등을 제작했다. 현재는 남북합동음악회와 평화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철주 문화기획자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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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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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09-18 20:01:49

    채주혁이라는 지휘자는 그야말로 천재지휘자네요? 나이는 저와 비슷한데도 말얘요~!!!! ㅡㅡ;;;;;;;   삭제

    • 박혜연 2016-07-06 14:45:39

      참고로 작곡가 고 김원균은 인민배우 정선화씨의 시아버지이며 그녀의 남편이자 김원균의 둘째아들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곡가로 활동했는데 몇년전에 세상을 떠났다고합니다~!!! 더군다나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은 원래 평양음악무용대학이었는데 2006년 작곡가 고 김원균을 기리기위해 학교이름을 변경한거라고 합니다~!!!! 물론 건물도 새건물이고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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