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라이프 인터뷰
촛불항쟁의 동력은 새로운 정당운동으로 모아져야 한다[인터뷰] 김동춘 교수, 광장정치와 제도정치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김동춘 교수 인터뷰는 사실 때늦은 것이다. 지난 5월 28일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촛불항쟁 국제토론회’에서 발표한 김동춘 교수의 토론문은 중요한 문서였다. 적시에 소개하지 못해 모대기다가 지방선거 이후 김동춘 교수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당의 고민도 깊어 가고, 민주노총이 6월 30일 8만여 명의 대규모 집회를 했지만 이러한 결집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보니 오히려 지금이 시의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이 있게 한 가장 가까운 우리의 역사 촛불항쟁을 되돌아보는데서 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김동춘 교수는 촛불항쟁의 의의와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해주었다. 참고로 김동춘 교수의 지난 5월 토론회 토론문 원문도 링크로 소개한다. 스페인 포데모스나 아이슬란드 해적당, 대만, 일본 등의 사례 발표문 역시 별도의 링크로 소개한다.

사진 : 조혜정 기자
대담 및 정리 : 김장호 편집국장

김동춘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성공회대 새천년관을 찾았다.
학교는 아담했고 그나마 진보의 숨결이 숨 쉬는 학문터라는 생각에 처음 와 보는 곳이지만 정감이 갔다.

질문 : 촛불항쟁에 대해서 다양한 분석들이 있었지만 최근 교수님 토론문이 중요한 지점을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분석하였는지요?

대답 : 두 가지 점입니다. 하나는 촛불시위가 한국의 민주화운동, 도시의 대중시위 흐름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앞으로 한국사회 민주화, 한국사회 변화에 어떤 위치, 성격을 차지하고 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21세기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파퓰리즘이라고 할까 우경화라고 할까하는 민주주의 후퇴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뚜렷합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위기 속에서 한국의 촛불시위는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나 하는 것이었죠.

김 교수는 촛불항쟁에 대해 촛불시위의 비폭력적 성격과 한계, 효순미선 촛불시위, 노무현 탄핵반대 촛불시위, 광우병 시위 등과 이번 촛불시위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한 논문, 분석글이 몇 편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노동계에서는 촛불항쟁을 뒷받침하고 인프라를 깔아준 것은 한상균 위원장 구속, 백남기 농민의 희생 등을 감수한 노농빈 총궐기인데, 왜 언급이 없나하는 불만도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 대담중인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질문 : 이번 촛불항쟁에서 참가주체와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볼 때 주요 특징을 어떻게 분석하셨나요?

대답 : 참가주체는 여러 조사통계가 있는데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또는 중간층이 많이 참가했습니다. 일반노동자, 청년들도 많이 참가했지만 주요 참가세력은 역시 중간층이었습니다. 여러 통계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됩니다.

구호나 요구는 박근혜 퇴진을 중심으로 세월호 문제, 재벌문제 등이 나왔습니다. 박근혜 탄핵을 넘어 우리사회를 어떻게 만들자는 비전을 아직 구호로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이 비선권력에 의해 농락당한 것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주요 동력이었습니다. 세월호 문제는 세월호 처리과정에 대한 분노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으로서, 주권자로서의 배신감이 촛불로 폭발한 것입니다.
6월항쟁이 전두환 퇴진, 직선제 쟁취가 핵심구호였고, 6월항쟁 후에야 789월 노동자 대투쟁 시작했던 것처럼, 이번 시위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부르조아 민주주의, 시민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시위문화의 특징은 어떻게 보시나요?

대답 : 21세형 대중시위문화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이전에는 시위가 나면 경찰과 정면충돌하고, 폭력화하면서 희생자가 발생하는 양상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시위와 축제가 결합하게 되는데, 이번 촛불시위도 그 흐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부터 효순미선, 탄핵, 광우병으로 연결되면서 시위가 축제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변했고 중산층 문화와 맞아 떨어지고 소득이 상대적 높고 고학력자들 참가하고, 여성들의 참가도 늘어났습니다.
한겨레신문 빅데이터 분석에 의하면 이번 촛불시위에서는 4,50대는 남자가 많은데, 20대는 남성보다 여성참가자가 뚜렷하게 많았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이런 현상은 혜화동 시위와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고, 촛불시위 촉발제가 이대시위였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대시위와 혜화동 시위가 연결되는 점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체의 지도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촛불시위도 그런 측면에서 누가 나와서 지도하려면 내려가라고 하면서 지도를 거부합니다. 시민단체 노동단체가 깃발을 내세워도 그 깃발로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촛불시위는 21세기형 대중시위,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시대의 대중시위적 성격도 가지고 있고 중산층적 문화하고도 연결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6월항쟁에서는 학생운동이 선도투쟁을 하고, 넥타이부대 등 시민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면서 6월항쟁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번에도 조직된 노농빈 대중이 민중총궐기라는 물리적 희생을 감수한 선도적 투쟁을 통해서 촛불항쟁을 이끌어낸 측면이 있는 것 아닐까요?

대답 : 그런 점은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구호가 나왔을 때 시위대중들이 차단하는 흐름도 있었습니다. 노동자 주도로 갔을 때 반격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참가자 사이에 있었습니다. 촛불시위의 일반 시민민주주의적 요구가 대중의 계급적 구호, 민중의 생존권적 구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꽤 큰 장벽과 단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를 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스스로 차단하는 메카니즘이 작용했습니다. 중산층과 노동자, 농민 대중과의 차이입니다.
대중들의 생존권적, 계급적 구호하고 시민적 구호와 일정한 단절이 있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했을 때 견제가 작동하는 것을 '마지노선 민주주의'라 부르기도 합니다.

마지노선 민주주의가 급 궁금해졌다.

질문 : '마지노선 민주주의'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시죠.

대답 : 대중들의 시위요구가 어떤 마지노선을 넘어가면 차단하고, 정부정책이 어떤 마지노선 밑으로 내려가면 폭발하는 양상을 말합니다. 시민민주주의, 주권문제, 투표권 침해 등 마지노선 아래로 내려가면 폭발하고, 위로 올라갈 땐 이것을 차단하는 것으로 마지노선이 아래, 위 양쪽에 다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마지노선 민주주의는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반공, 반북, 금기,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 메카니즘이 작동합니다.
이번에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은 밑의 마지노선을 건드린 것이죠. 그래서 폭발했는데, 전 국민적 요구가 아니라 계급적 요구가 제기되면, 거부하는 양태를 보입니다. 그런 계급적 요구를 제기하면 ‘몰린다’, ‘고립된다’, 이런 식으로 거부하는 것이죠.

위로 올라가는 문제는 분단체제영향과 더불어 중산층 헤게모니가 작동하기도 합니다. 숨겨진 잠재적 공포감, 반공주의 체제하에서 길들여진 사람들이 계급적 요구가 나타났을 때는 군대가 출동하거나 폭력적 진압을 하게 되면 고립된다는 공포감이 작동하는 것이죠. 중산층도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적 요구는 안전하고, 계급적 요구는 위험하다’는 식의 의식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원래 촛불항쟁이 재벌개혁 요구로 펑하고 폭발해야 하는데 재벌개혁 요구로 폭발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요구를 수용했을 때 반격에 직면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을 하기 때문에 일면 노동대중을 배제하는 정책을 쓰게 됩니다. 자기들에게 표가 안 될 뿐더러 정치적 위험까지 있는 것이죠.

노동대중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이 부분을 노동대중이 반드시 돌파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노동대중의 요구를 어떻게 사회적 요구로 만들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이명박 말처럼 ‘떼잡이’, 그냥 떼쓰는 집단이라는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보수언론의 이런 프레임에 일반시민들도 동조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이 딜레마를 노동운동이 지혜롭게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 김동춘 교수가 연구실에서 민플러스 김장호 편집국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질문 : 촛불항쟁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문제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대답 : 이번 촛불항쟁은 신자유주의 모순 문제를 직접 표현한 것은 아니고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외국에서는 아큐파이운동(Occupy Movement)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시애틀부터 시작해서 이탈리아, 스페인 등 모두 아큐파이운동을 했습니다. 아큐파이 운동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중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큐파이운동은 옛날식의 혁명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시위도 아닙니다. 권력탈취를 위해서 누가 지도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촛불시위도 아큐파이운동과 비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별한 지도가 없이 대중의 분노로 폭발한 것이죠. 그 분노가 형식적으로는 박근혜 정권, 최순실에 대한 분노가 촉발되었지만 그 밑에는 깔려있는 것은 이 사회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가 있습니다. ‘고단함’이죠. 특히 청년들 같은 경우에는 고단합니다. 참가했던 청년들과 인터뷰를 좀 해 봤는데 생각이 비슷합니다. 구체적으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특히 20대 여성들 같은 경우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박근혜 퇴진도 좋은데 그 밑에 깔린 생각은 ‘못 견디겠다’, ‘도저히,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냥 시위에 계속 나가야만 되는. 안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이런 겁니다. 이것이 이번에 2,30대 청년이 촛불 시위에 계속 나간 이유예요.

이 청년들이 신자유주의 개념도 모를 거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테지만, ‘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이 이 시위 참가했던 2,30대 특히 20대 여성, 남성들의 욕구였죠. 이것은 신자유주의 모순이 결집된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 고용불안, 주택문제 등이 집약이 되어서 나타난 것입니다.

이번 한국에서 청년들이 하나의 단일한 구호를 내걸지는 않았지만 촛불시위에 계속 참가했던 이유와 외국에서 아큐파이 운동에 참가했던 청년들의 문제가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대만에서 의회점거했던 청년들, 홍콩에서 우산시위 했던 청년들하고 비슷해요.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항쟁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본주의 타도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사실 청년들, 20대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기성세대보다 훨씬 자본주의적이죠. 예를 들면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화 반대, 비정규직 교사 정규직화 반대 등의 태도를 보면 2,30대 청년들은 훨씬 더 시장에 길들여져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훨씬 더 보수적입니다.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 부정의를 거부합니다. 이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감은 사실 평등주의 보다는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좌파의 이념과는 좀 관계없는 의미의 공정함에 대한 요구가 있고, 편법을 반대하는 것이죠. “왜 최순실 딸은 시험도 안보고 똑같이 하냐. 우린 시험보고 들어왔는데”.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 자존감이 높아진 이런 류의 정의감과 비정규직화된 대다수의 청년들의 삶의 고단함, 피곤함들이 어우러져 촛불시위에 참가한 것입니다. 이렇게 동시대의 아큐파이 운동,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첨언하면, 지난 국제토론회에도 참가한 스페인 포데모스에서 온 32살의 애마 로즈 알바레스 크로닌, 아이슬란드 여성 시인 비르기타 욘스도티르 같은 청년들은 정치개념이 아주 새롭습니다. 전통적인 권충(그들은 운동권을 ‘권충’이라고 하죠. 웃음), 좌파세력들하고는 관계없는 사람들입니다. 아큐파이운동이나 이런 류의 흐름은 전혀 다릅니다. 급진 중산층, 레디칼 중산층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스페인, 아이슬란드, 그리스 운동을 다 주도하고 있어요. 더 밑바닥에 있는 대중들은 더 보수화되고 있고, 약간의 교육을 받고 급진적 중산층들이 새로운 대중정치운동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죠. 한국 촛불시위도 그 흐름 속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운동의 공통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구태여 반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타도, 사회주의 그런 걸 내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불평등과 끝없는 경쟁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가 있고, 외국에서는 아큐파이운동, 한국에서는 이번 촛불시위에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질문 : 촛불항쟁이 한국의 정치변동과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십니까?

아무리 대중시위를 해서 정권을 무너뜨리더라도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지는 못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당이 민의를 대변하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정당을 통하지 않고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한국에서 4.19 이후 발생한 대중시위는 언제나 절반만 성공했습니다. 기성세력을 쫓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새 질서, 새 세력을 세워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때문에 언제나 다시 기득권 세력들이 권력을 탈취해가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입니다.

유럽같은 경우에는 아큐파이운동의 결과로 정당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촛불시위 이후 새로운 정당을 못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꼭 이름이 정당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예를 들면 퇴진행동이 지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시위를 밑에서 다 준비하고, 인프라를 만들고 했잖아요? 그런데 퇴진행동 내에서 논쟁이 있었죠. 결국 촛불항쟁 이후 기록 정리하는 쪽으로 마무리하고 끝내버렸잖아요. 이후 촛불시위의 요구를 가지고 문재인 정부를 감시, 견제 역할을 포기한 것이잖아요? 그런 역할을 진보진영조차도 포기한 겁니다. 우리가 정치에 대한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드러냈다고 봅니다. 당시 아마 누가 “정당하나 만듭시다.” 했다면 격렬한 견제를 받았을 거예요. 말도 못 꺼냈을 겁니다. “당신 이거 하려고 시위했나?” 이렇게 나왔을 테니까요.

유럽에서는 아큐파이운동이나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통해서 어떤 형태로든지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고 그리스 같은 경우에는 집권까지 했고, 스페인은 제3당이 되었고, 아이슬란드 같은 경우에도 해적당이 집권은 못했지만 권력교체까지 갔습니다. 홍콩 같은 경우에도 우산시위 한 청년들이 스물 한 두 살의 나이에 의회에 진출했어요, 이렇게 다른 나라들은 큰 시위를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세력화가 되는데, 우리를 이게 안되고 있습니다.

정당이 어떤 성격이라도 괜찮습니다. 여성당도 좋습니다. 그런 정치세력으로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기존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헤게모니를 쥐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분명한 성과이긴 하나. 그 지지율은 떨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겁니다. 견제장치가 없는 거죠.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또 시위를 계속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폭발적인 대중시위는 일상적으로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런 시위는 예외적인 경우에 하는 것이지, 일상적인 것은 결국은 정치를 하고 자기 후보를 국회에 보내고 그 사람들이 법을 만들고 제도를 바꾸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해야 하는 것인데, 이게 안 되고 있습니다. 광장정치와 제도정치 사이의 간극이 굉장히 크다는 거죠.

이번 촛불시위도 사람들은 혁명이라고 이야기하고, 나도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고리가 빠져있습니다. 그 빠져있는 고리가 바로 정당의 문제입니다. 정당이든, 정당적 형태의 대중적인 결집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일반 대중들 마음에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그 마음이 구체적으로는 청와대 청원방으로 표출되는 정도입니다. 툭하면 청와대 청원으로 갑니다. 촛불시위의 에너지를 수용할 정당 형태의 그릇이 없기 때문입니다.

질문 : 촛불항쟁이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한 구조적 요인, 주체적 요인, 진보진영의 약점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어떤 문제를 제기하시겠습니까?

대답 : 결국 노동운동, 시민운동, 지식인 세 축입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탈정치성을 계속 강요받고 있습니다. 전교조 선생들 같은 경우 정치활동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제도적 장벽이 심각합니다. 노동운동도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면 ‘순수성이 없다’는 식으로 공격받습니다.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이 정치적 구호를 내걸어야 되고, 박근혜 퇴진뿐만 아니라 선거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등 우리 사회에서 가로막고 있는 법적, 제도적 문제들을 구호로 내걸고 해야 하는데 계속 탈정치성을 강요받고 뚫고 나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뚫고 나가면 자기 조직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현실입니다. “저 사람 정치하려고 저러나?”, “활동 열심히 하더니만 저 사람 욕심이 있었네”. 이렇게 대중 스스로가 탈정치성이 이미 내면화되어 있어요. 또 실제로 활동가들이 자리를 위해 국회에 가거든요. 그러니까 정치가 자기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치에 대한 환멸이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시민운동, 노동운동 모두 내면화된 탈정치성을 해결해야 합니다.

지식인들 같은 경우 정치를 하려면 사회비전이나 정책을 내놓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식인들은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세대가 2,30대에는 지식인, 학생운동 출신 학자들 중에서도 비전이나 대안을 이야기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지식인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기성체제에 길들여져 있고, 본인들 살아남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민운동, 노동운동, 지식인 3주체가 촛불시위를 정치세력화시켜낼 수 있는 동력이 부족한 것이죠. 예를 들면 스페인 포데모스의 지도자는 대학교수였습니다. 당수가 학생들 가르치다가 정치에 투신한 경우인데요, 그런 사람들이 노동운동, 시민운동, 지식인운동 중에서 많이 나와 주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이 나와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 옛날식으로 국회의원 되려고 나온 것 아니다. 우리사회를 바꾸려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식으로 되어야 하는데 다들 기피합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기성 정당에 들어가고 편입되고 있습니다. 결국 그 질서안의 한 사람으로 남게 되고, 결국 대중에게는 정치하려고 했던 사람으로 외면받고 마는 거죠. 독자정당을 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생존가능성이 너무 낮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길을 끊임없이 가야합니다. 진짜 변화는 결국 정치로 귀결되고 정치를 통해서만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거니까요.

질문 : 광장정치와 제도정치 사이의 간극은 결국 정치, 정당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간극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이는데요.

대답 :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정책이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시위에서 끝나는 것이고, 정책은 ‘우리가 이렇게 시위를 하는 것이 뭘 하기 위한 것인가’에 대한 겁니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100석 이상의 의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자유한국당이 망한다고 세상이 바뀝니까? 지금처럼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했는데도 뭐가 바뀌고 있나 하는 겁니다. 결국 구체적 정책문제입니다.

정책을 가지고 대안도 내고 구호도 제시하고 시위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정책이라는 고리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습니다. 왜 관심이 없나? 국회의원들은 정책을 내세우는 게 표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 사회는 지역구 중심이고, 정책에 대해서 입법활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지역구 관리 제대로 못하면 다음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정책에 관심이 없습니다. 일반 대중 역시 위기가 닥쳐올 때만 분노를 표시하고 시위를 하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정책을 보고 판단지 않아요. 대중들도 정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주로 도덕적으로 문제를 보고, ‘아주 나쁜 놈이다’, ‘좋은 사람이다’하는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개악 투표에 찬성했던 의원이 누구인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협조했다면 그게 누구인지, 다음에는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든지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일반 시민 포함해서 이렇게까지는 관심이 없어요. 종부세 시늉만 하고 있을 때, 더불어민주당 입장은 뭐냐 하고 물어야 하는데, 세입자들 자신부터가 닥치면 싸우기는 하지만 건물주와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을 응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기는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층에서나 관심이 있지 조합원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복지확대, 조세문제 등등의 정책을 중심으로 대중이 모여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의원들도 대중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광장정치와 제도정치의 간극을 메꾸려면 정책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대중운동, 정치운동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대중이 굳이 정치활동, 정당활동을 하지 않아도 대중적 정책활동은 가능하기도 하고 또 필요합니다.
세입자들 입장에서 보면, 특히 청년들의 경우, 집값이 이런 상태로 유지되어서는 안정적 주거권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런 정책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표결할 때 겁내게 해야 합니다. 대중이 심판한다는 것을 알면 대중의 이익을 무시하는 투표를 못하는 거죠.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투쟁사업장을 엄호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러나 정책활동을 통해 조직대중을 설득하는 활동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꼭 직접정치를 안하더라도 대중조직이 노동시간단축, 최저임금 등에 관해서 반노동자적 입장을 가진 사람을 반드시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리고, 옹호하는 사람을 밀어주는 일상적인 대중적 정책운동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중조직의 역할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정치활동이기도 합니다.

그냥 이슈가 발생하면 도심지에 나가 시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강력한 정책역량이 있어야 대중적 정책활동도 추진할 수 있겠죠. 그런데 지금 진보진영 정책역량은 매우 취약합니다. 있는 역량들도 다 떠나갑니다. 기본 정책역량 토대가 있어야 통계도 동원하고,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건데 이 부분이 매우 취약하여 안타깝습니다.

질문 : 아큐파이운동이나 촛불시위와 같은 21세기 자연발생적인 다중의 운동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극복하는 대안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그 가능성과 한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대답 : 글로벌 자본주의 문제인데요. 글로벌 신자유주의 체제에 파열구를 내는 데는 일정한 역할을 하겠지만 대안질서를 만들어 내는 건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스 시리자의 경우 집권까지 했지만 구제금융을 수용했습니다.한국처럼 수출주도의 경제, 외국에 경제개방이 강하게 되어 있는 나라인데, 역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한 나라에서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집권까지도 할 수는 있으나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화된 개방적 금융자본주의체제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세계화, 결국 이것은 미국화인데요. 이러한 현실을 부인할 수 없고, 중미 패권구도의 균열속에서 미국 헤게모니가 수그러들거나 축소되어야 새로운 질서가 창출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반신자유주의 운동, 아큐파이운동 같은 경우 중도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요구나 구호가 자기들 삶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층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우파 파퓰리즘 같은 것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트럼프 현상이란 백인 남성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현상입니다. 난민문제가 심각한 유럽 노동자층 역시 난민들 때문에 자기들 일자리 없어진다고 생각하며 우파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좌파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파를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더 나쁘면 극우인종주의가 발호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신파시즘 현상을 낳을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진보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극우보수세력을 지지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반신자유주의가 우파의 지지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자유주의 모순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그 결과가 좌파나 진보세력화로 잘 안 되고 있는 것은 글로벌 자본주의 압력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트럼프 현상과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의 쇠퇴를 반영합니다. 북미협상이 진행되는 것 역시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뚜렷한 징후입니다.
미국 헤게모니 쇠퇴 이후의 대안질서가 옛날식의 사회주의는 아니겠지만, 친환경적인 질서, 여성문제, 심각한 고용불안 등의 문제를 연결해서 해결하는 새로운 대안들이 향후 10년 사이에 본격화될 것 같습니다.

질문 :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유력한 진보정당들은 주로 조직운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녹색당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요. 그런데 유럽의 대안정당운동이나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대중의 모습은 개인주의가 내면화된 역동적인 다중들이고, 소설 미디어를 통해서 네트워크화된 집단지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운동적 성격을 가진 진보정당운동이 다중화된 대중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대답 :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는 뭐한데요. 한국에서 진보정당운동이 성장하려면 정당정치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선거법과 정당법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소수정당이 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반시민이 부담없이 정당원이 될 수 있도록 정당법을 바꾸고, 창당을 위해 6개 광역당을 채워야 하는 문턱을 없애고 지역정당도 만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마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잘 안하려고 할 겁니다. 때문에 소수진보정당이 시민사회와 손잡고 압박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헌법보다 선거법 개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선거법, 정당법 개혁에 실패했습니다.

정당정치의 문턱을 낮추어 놔야 여러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실험을 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생깁니다. 무소속, 소수정당이 우선 지자체에 진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소수정당이나 진보정당이 실험을 할 수 있고 사람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는 훈련이 필요하고 2,30대 사람들이 지자체같은 데서 시의원 구의원 등을 해보면서 시정참여 경험을 쌓고 감각을 익히고 해야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시민들이 기본정치교육이 안되어 있습니다. ‘정치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내 삶을 바꾸는 정치를 만들 수 있는가’, ‘정치에 개입하고 법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훈련이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정치=선거’가 전부입니다. 선거는 여러 가지 방식의 정치참여 이후에 나오는 결과일 뿐이지 선거만이 정치는 아닙니다.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자기 삶에 어떤 영향를 미치는가’ 하는 내용이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필수과목으로 배치되어야 하고, 노동조합교육에서도 필수과목으로 들어가 줘야 합니다.
지금 선거법 체제에서는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선거법 개정 캠페인운동과 교육 등이 결합하여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토대가 만들어져야 일반대중들이 당원이 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당원이 되어야 직접정치를 할 수 있고, 진정한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선거철이 오면 천 원, 이천 원 내고 급조해서 후보 만들고 국회 보내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원이 되어서 평소에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문 : 최근 기무사가 촛불항쟁을 무력 진압하려던 기획이 폭로되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대답 : 6월항쟁 때도 군대출동을 고려했지만 미국이 막았다고 하죠. 촛불시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이 위기에 처할 때는 안보를 내세워 총칼로 진압해야 기득권이 유지되는 사회가 한국사회입니다. 그 동안 총칼을 동원해서라도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유권자의 30%와 기득권층에 있었던 겁니다. 기무사의 기획은 그런 입장을 대표한 것입니다.
시민들은 세상을 선거를 통해서 바꾼다고 하지만 이것을 물리력을 동원해 진압하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과정이겠죠.
이들 수구보수세력이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그 입지가 심각하게 축소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군부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력화하고 군에 대한 문민화를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 기무사는 해체하고 각 부대별로 방첩기능을 분산시키면 됩니다.

<원문 보기>

○ 2016-2017 한국의 촛불시위와 견고한 민주주의의 길_김동춘

https://drive.google.com/file/d/1VVRSS_6qlmlyqjUFij5XZ1DfUWOYwFsj/view?usp=sharing

○ 촛불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남겨진 과제_백낙청

https://drive.google.com/file/d/1zF1b6iQqyIUvjHUHyY-MRSpyIQ99FsLa/view?usp=sharing

○ 스페인의 광장 민주주의 사례

https://drive.google.com/file/d/1-itbwa437g5CGQpGaI5PFyXJXNj-mvi2/view?usp=sharing

○ 일본의 광장 민주주의 사례

https://drive.google.com/file/d/1PF1SYv3qIPe2syfT1iQrKQ9th50fiK6z/view?usp=sharing

○ 대만 민족주의와 해바라기운동 사례

https://drive.google.com/file/d/1bQxt4sKo_NQW164TvPbsmH3-A0dT-qtc/view?usp=sharing

○ 아이슬란드 해적당의 경험과 새로운 모색

https://drive.google.com/file/d/1IpeNiA0n-iJa1QBzsmfgLqZ_nwnvb95C/view?usp=sharing

김장호 기자  jangkim2121@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장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울산시민 2018-07-17 23:33:55

    유익한 기사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요즘 선거 끝나고 고민이 많았는데
    함께 읽고 꼭 토론해보며
    진보정당의 나아갈 방향을 잘 아보고 싶습니다   삭제

    • 김도현 2018-07-17 20:47:01

      참 어려운 문제내요. 김동춘선생님 얘기 공감도 많이 가지만 한국사람 정치적 의식 수준은 아직 유치원생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불당을 진보라고 생각하죠. 이런 한계성을 대중들이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 소잃기 전에 외양간 안고친다고 한국사람 의식 수준이 아직은 이것밖에 못되니 답답할 노럭이죠.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삭제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