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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라틴아메리카의 투쟁(1)-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마르크스 사상 백문백답(32)
  •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7.0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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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틴아메리카의 세 가지 길

신자유주의는 세계 체제입니다. 미국, 영국은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가 되었죠. 일본, 서독이나 한국 및 중국은 서로 다른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떻든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반면 거의 대부분(멕시코나 브라질을 예외로 한다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원자재(농산물 및 광산물 등) 수출 국가가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미국, 영국에서는 트럼프나 브렉시트와 같은 현상이 출현했지요. 이런 현상은 쇠락한 러스트 벨트를 되살리려는 제조업 자본과 공장 노동자의 염원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어요. 반면 서독 등 유럽 국가에서 주로 자율운동의 형태로 저항이 출현했습니다. 자율운동은 여성 노동자, 이주민 노동자, 청년 실업자 등 차별받는 노동자가 주도합니다.

그렇다면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는 어떤가 보죠. 라틴아메리카라 해도 서로 차이가 있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양상은 차이가 있을 겁니다. 대체로 보면 세 가지 형태가 우선적으로 눈에 띕니다.

거친 판단이기는 하지만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멕시코의 사파티스다가 전통적인 사회주의 혁명에 가까운 형태라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페론주의의 전통을 잇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브라질의 룰라를 들 수 있겠죠. 그는 상당히 서구적인 형태의 저항을 펼쳐나갑니다.

이제 간단하게 이 각각의 형태를 살펴보자 합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저항운동을 살펴보다 보면 라틴아메리카는 거대한 늪이나 바다와 같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여기서 수많은 기존의 운동 형태들이 서로 부딪혀 깨어지고 새로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운동들이 출현합니다. 그런 운동 형태는 과거의 기원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며, 같은 이름을 지닌 것조차 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취하고 나타납니다. 라틴아메리카는 흥미로운 대륙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토착귀족과 상인자본의 투쟁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대개 유사합니다. 대체로 16세기 초 식민화됩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스페인, 포르투갈 제국을 무너뜨린 이후, 1830년경 독립을 획득하죠. 이 독립운동의 영웅이 시몬 볼리바르입니다. 볼리비아라는 나라는 볼리바르의 이름에서 나왔죠. 차베스가 대통령 당선 전 주도했던 정당이 ‘볼리바르 혁명운동’당입니다.

19세기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는 미국의 남북 대결과 유사한 갈등이 일어납니다. 한편에 농장 및 광산 소유 귀족, 과두민주주의자, 노예노동 옹호파, 다른 한편에 상인자본가와 지식인 관료, 중앙집권주의자, 노예 폐지론자가 대결했습니다. 결국 19세기 후반에 후자가 승리하죠.

19세기 말 20세기 초, 라틴아메리카는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합니다. 우선 구 귀족의 토지를 장악한 상인자본은 거대한 수출용 농장, 광산을 건설합니다. 이를 이른바 플랜테이션화(단작 상품 재배)라고 하죠.

외국자본 가운데서도 주로 미국 자본이 들어오죠. 이 자본은 새로운 농장, 광산을 개척하기도 하고, 원자재를 수송하는 철도, 항만 등을 건설하고, 원자재를 가공하는 가공공장을 건설하기도 합니다. 이런 외국자본은 플랜테이션을 더욱 강화합니다.

노예노동이 사라지자 이를 대체하면서 남부 유럽(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이주민이 들어옵니다. 이들은 농장 광산에서 노동자로, 또 도시에서 운송 노동자 및 가공공장 노동자로 일합니다. 이들은 당시 노예와 마찬가지로 가혹하게 착취되었다고 합니다.

3)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의 투쟁

이런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정치적 구도도 변화합니다. 이제는 자유주의자와 급진주의자(민주세력)가 대결합니다. 양자는 모두 플랜테이션화, 외국자본 도입, 산업개발 등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합니다. 차이라면, 자유주의자는 투표권을 소수 자본가에 제한하고 급진주의자는 투표권을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지요.

또 전자가 사적 자본의 특권을 보호한다면 후자는 국가의 힘으로 사적 자본과 외국자본을 통제하려 노력했습니다. 전자는 노동자의 억압과 착취를 당연시한다면 후자의 경우 노동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 일정한 정도 보호하려는 태도를 취합니다.

1930년대는 공황기에 자본주의가 위축되자, 라틴아메리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경제는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자유주의자들이 군부를 동원해 정권을 차지합니다. 많은 라틴아메리카가 억압적 군부의 지배 아래 들어가죠.

그러나 40년대에서 50년대 말까지 라틴아메리카는 경제적으로 성장합니다. 전쟁 경기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수출이윤이 상당했습니다. 그러자 억압적인 군부세력이 물러납니다. 대신 급진 민주세력이 정권을 장악하죠.

▲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가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 : 구글 검색]

4) 노동운동과 군부 쿠데타

20세기 초 이주민 노동자가 광범위하게 발달하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노동자의 정치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나코 생디칼리즘 계열의 노동운동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 경제공황 시기, 억압적 정권 아래,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공산당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죠. 아나코 생디칼리즘과, 공산주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서로 교배되면서 새로운 다양한 운동이 출현하는 온상이 되었죠.

초기 노동자운동은 주로 민주세력을 지원하고 민주세력과 연합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40년대 말부터 노동자운동 속에 급진민주세력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형태가 발전하게 되죠. 대표적인 것이 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까지 전개된 페론주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5~60년대는 노동자의 사회주의운동이 전성기였습니다. 노동자운동 가운데 마오주의 세력이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마침내 50년대 말에 이르면 쿠바혁명이 발생합니다. 이는 후일 6~70년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혁명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죠. 심지어 칠레에서는 1972년 선거 방식을 통해 사회주의자인 아옌데가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6~70년대 쿠바혁명은 라틴아메리카의 지배자들을 경악시켰습니다. 라틴아메리카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쿠데타는 미국이 뒤에서 조종했습니다. 가혹한 탄압, 고문과 실종이 뒤따라 일어났지요. 이 군부는 자유주의적 정책을 탄압을 통해 밀어붙였습니다. 30년대 군부 쿠데타가 급진 민주세력에 대항한 것이라 한다면, 6~70년대 군부 쿠데타는 사회주의운동에 대항한 것이죠.

5) 80년대 신자유주의

그리고 80년대가 되었습니다. 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흥미롭게도 민주화와 신자유주의가 동시에 출현했습니다. 과거 민주세력이 이제 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하게 되죠.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미국은 더 이상 군부독재 세력을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패배, 이란혁명은 미국에 중대한 경고를 주었죠. 당시 카터 정부는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정부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고 민주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지원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니카라과에서 카터 정부가 12인 민주세력을 지지했던 겁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경제적으로 과거 군부독재 세력은 외국 자본에 의존해 개발정책을 실시했습니다. 80년대 유가가 하락하자 외채가 증가했지요. 그 덕분에 거의 대부분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IMF 지배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민주세력은 IMF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민주세력은 미국과 민주화와 IMF 요구를 교환했던 거죠. 이렇게 해서 라틴아메리카에 민주세력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80년대 전개되죠.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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