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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와 유럽의 자율운동(1)마르크스 사상 백문백답(28)
  •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6.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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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유럽에서 새로운 저항운동이 일어났어요. 그것을 일반적으로 자율운동(autonomia movement)로 부릅니다. 자율운동이 어떤 것인지 이제 볼까 합니다.

1) 유럽의 특수성

우선 유럽 그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죠. 유럽이나 미국은 경제적으로 병행 발전했어요. 60년대 대량생산 체제는 70년대 초 위기를 맞이했고 80년대 복지를 축소하면서 작은 정부가 등장했습니다. 80년대 자동화 기술혁명 덕분에 다시 성장국면을 회복했으나 90년대 초 다시 위기에 빠졌지요.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금융자본의 국제분업 체제가 출현했습니다.

이런 국제분업 체제에서 맡은 역할은 달랐지요. 미국과 영국이 금융자본의 허브 국가가 되었다면,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은 고도 제조업 국가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소재재(강철, 화학 등)와 생산재(자동화 기계, 자동차 등)를 주로 생산했지요.

유럽은 세계 차원의 신자유주의 속에 있으면서도 내적으로는 다시 지역적 신자유주의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그것이 유럽의 통화동맹이지요. 유럽 통화동맹은 정치적인 동맹 체제로서 1993년 구축된 유럽연합과 구분하여 1999년 유로화 도입을 통해 구축됩니다.

세계 신자유주의가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미명으로 분장했듯이 유럽 통화동맹도 처음에는 지역 공동체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가운데 균등하게 발전할 것으로 믿었어요.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그런 기대와 영 딴판입니다.

결과를 보면 유럽 통화동맹은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을 상품시장으로 장악하기 위한 체제였어요. 일견 평등해 보이는 통화동맹 속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 시장을 어떻게 장악했을까요?

그 기법은 간단했습니다. 통화동맹을 구축하면서 각 나라는 기존의 화폐를 유로화로 교환했습니다. 이때 재정적자 국가였던 남유럽 국가들(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의 통화를 고평가해주었죠. 자산계급(여기에 일부 고수익 중산층도 포함)은 덕분에 불로소득을 얻었어요.

그 대신 이런 나라들의 상품은 가격 상승으로 경쟁에서 도태되었습니다. 재정 주권과 화폐 주권을 상실한 남유럽 국가들은 손쓸 여지가 없었습니다. 결국 유럽은 독일과 프랑스의 상품시장으로 전락했지요.

2) 넘치는 실업과 부동산 투기

그 결과 오늘날 유럽 통화동맹은 부유한 독일, 프랑스와 빈곤한 남부유럽 국가들로 분열되었어요. 남부유럽 국가의 기업은 무너지고 실업자가 확대되며, 국가재정은 파산상태에 이르렀어요. 그리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만, 지금 이탈리아, 스페인도 위태롭습니다.

유럽 시장을 장악한 독일, 프랑스라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 프랑스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본이 축적되었지요. 게다가 국제 금융자본도 자본시장(증권, 채권)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들어온 자본은 성장기에는 기업 확장에 투자되었습니다. 곧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이런 자본은 주로 부동산 등 자산 투기를 불러일으키지요. 경제 성장을 통해 독일과 프랑스는 복지를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부동산 투기는 곧 사회적으로 박탈감을 강화했습니다. 아무리 일해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은 실업자와 재정파산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는 부동산 및 자산 투기 때문에 서서히 병들어갔습니다.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지, 독일과 프랑스도 실업자가 생겼고 남부유럽에도 부동산 투기가 발생했어요. 상대적으로 비중이 달랐을 뿐입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저항운동이 자율운동이었죠. 이탈리아의 공장 자주관리운동과 독일의 주택 점거운동이 대표적인 양상입니다.

▲ 지난 2011년 독일 뮌헨 ‘보안 컨퍼런스’ 반대시위 중인 자율주의그룹[사진 : 위키백과]

3) 자율운동

이런 문제들 앞에서 유럽의 민중도 다시 저항에 나서기 시작했어요. 민중의 저항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하나는 체제 내(內) 개혁운동이었죠. 이것은 민주화를 더욱 심화시켜서, 체제내 개혁을 하자는 운동이죠. 이런 체제내 개혁 운동을 추진했던 세력이 70년대 흔히 ‘여피’ 세대라 부르는 사람들이며, 이른바 참여민주주의 세대이고,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자(리버럴)들이었습니다.

이런 체제내 개혁과 달리 체제를 근본적으로 전복하고자 시도했던 급진세력도 출현했습니다. 이 세대는 60년대 저항에 나섰던 신좌파(비트 세대, 또는 히피 세대)를 이어받았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신좌파의 투쟁방식과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력을 신좌파와 구분하여 자율운동 세력이라 부르지요.

영어로 autonomia(독일어로는 아우토노멘autonomen)를 여러 가지로 번역하죠. 흔히 자율이라 번역하지만 자발성, 자동성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철학자는 자발성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 말은 자주성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 봅니다. 이렇게 번역하는 예를 들자면 ‘자주관리’라는 말이 대표적인 경우이죠. 여기서는 흔히 하듯이 자율이라고 번역하겠어요.

이 자율운동 세력이 등장한 시기는 대체로 70년대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지만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것은 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였습니다. 두 운동은 거의 동시적으로 활동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평화적인 촛불세력과 급진적인 광장세력이 함께 활동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4) 자율운동의 구체적 형태

이 자율운동 세력은 다양한 형태로 출현했습니다. 크게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낙태를 합법화하려는 여성운동, 핵발전소나 핵재처리시설을 점거하는 반핵 시민운동을 들 수 있겠죠. 이런 운동은 리버럴도 시도합니다만, 자율운동 세력은 방법적으로 리버럴과 달리 합니다.

아무래도 자율운동에게 핵심적인 운동을 들라하면 세 가지이죠. 문 닫은 공장을 직접 경영하려는 노동자운동이나 빈 집을 점거하는 청년의 점거운동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거리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공연하는 예술가의 운동도 들 수 있겠어요.

이런 운동은 리버럴들이 대개 기피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운동 밑에는 자본주의 질서의 기초가 되는 소유, 상품 개념이 근본적으로 부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반체제적이라고 볼 수 있죠. 이런 점에서 자율운동은 60년대 신좌파만큼이나 체제 부정적인 급진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 곳곳에서 출현한 이런 자율운동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독일 녹색당의 운동은 널리 알려졌지만 독일 자율적 환경운동(반핵운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나체 여성운동은 어느 정도 소개되었지만 청년들이 빈 집을 점거하는 점거투쟁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5) 이탈리아 철학자 네그리

최근 네그리와 같은 철학자가 소개되면서 자율운동이라는 개념이 지식인 예술가 사이에서 상당히 알려졌습니다. 네그리는 그 스스로 자율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요. 심지어 그는 이탈리아 도시게릴라 ‘붉은 여단’의 배후자로 지목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네그리의 철학을 소개하겠습니다. 네그리는 자율운동을 80년대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으로 서비스 산업, 문화 산업, 지식정보 산업이 등장하면서 출현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자율운동의 기반은 새로이 등장한 서비스 노동자, 지식 노동, 감정 노동자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적인 제조업이 육체노동자의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체제라면, 그는 새로운 산업에서는 잉여노동이 사라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요. 지식, 감정, 서비스 노동은 행위자의 인격에 의존하며 행위 대상에 따라 차별적이므로 추상화할 수 없지요. 그러니 마르크스의 노동의 양화(추상화) 위에서 성립하는 잉여노동(지불받지 않은 노동)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이런 산업이 등장하면서 노동은 자율적인 노동으로 전환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오늘날 온라인상에 수많은 지식정보 노동, 서비스 노동, 감정 노동이 무료로 넘쳐흐르죠. 우리는 자율적으로 밴드를 구성하고 SNS에 글을 올리며 다양한 취미활동을 전개합니다. 자율성의 시대가 도래한 거죠.

그러면 서비스, 문화, 지식정보 산업에서 이윤이 획득되는 이유는 무엇이냐 의문이 들 겁니다. 그는 이것을 토지의 지대를 설명하듯이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지식정보 산업에서 어떤 네트워크(예를 들어 ‘네이버’)는 다른 네트워크(예를 들어 ‘다음’)보다 지식정보가 유통되는 더 좋은 길목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네트워크에 따라 일종의 지대가 발생하죠. 이 지대를 네트워크를 소유한 자본가가 가져가면서 그런 자본가가 자본을 축적한다고 합니다.

이제 이런 지대를 철폐하는 운동을 펼쳐, 서비스 감정 지식정보 산업에서 지대를 징수하는 자본가들만 제거하면 된다는 겁니다. 간단히 네이버의 네트워크에서 네이버만 추방하면 유토피아가 도달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식정보, 감정, 서비스 노동은 자율적인 노동으로 된다는 거죠.

네그리의 자율운동 개념은 많은 문제점을 갖는 주장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지요. 여기서 이론적 비판은 생략합니다. 특히 이런 자율운동 개념은 실제 유럽 자율운동의 모습과는 무관합니다. 앞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의 자율운동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네그리의 주장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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