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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혈연인가, 생활공동체인가?(2)마르크스 사상 백문백답(12)
  •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2.12 12:42
  • 댓글 1

문 : 마르크스주의가 민족이라 말하는 것은 민족주의자가 말하는 민족과는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혈연으로서 민족 개념은 거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부르주아 시장의 공동체로서 민족을 말하니, 결국 민족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닐까요? 혈연은 영원하지만 생활은 일시적이니까요.

1) 개미의 우화

혈연은 부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대 도시국가가 형성되면서 혈연은 민족적 규모로 발전합니다. 양적인 확대죠. 혈연으로서 민족은 봉건제 국가, 근대 국가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합니다.

비유하자면 개미를 생각하면 됩니다. 개미는 지상을 기어가다가 벽을 만나면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갑니다. 벽에서 미끄러지는 게 않을까 생각하지 맙시다. 이건 우화니까요. 개미는 벽을 기어가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자기는 여전히 지상을 기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개미에게는 평면밖에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개미의 기어가는 선은 이미 3차적 공간이 되죠.

마찬가지입니다. 혈연으로서 민족도 이렇게 역사적 과정 속에서 그 의미를 변화합니다. 혈연은 여전히 혈연입니다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규정됩니다. 이제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 공간에서 규정됩니다. 비유가 어쩐지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2) 봉건국가

우선 봉건시대로 가봅시다. 봉건시대에 들어오면서 출발점이 되는 것은 여전히 고대에 형성된 민족입니다. 중세 초 여러 민족은 자기 땅에 머무르지 않고 정복전에 나서죠. 고대에 정복은 노예를 획득해서 자기 나라로 데려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정복 민족은 정복된 나라를 차지하고 피정복민을 이용해 경작을 하죠. 그리고는 일정한 세금(부역, 공물, 조세 등의 형태로)을 강제로 징수하죠. 이게 봉건제입니다.

생산력이 좋은 토지에 기초한 정복 왕국은 나머지 경쟁 왕(공)국을 제치고 점차 세력을 확대하죠. 이때 세력 확대는 주로 정복을 통해 일어나지만 스페인에서처럼 왕조간 결혼동맹을 통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결합에서 구 영주는 제거되지 않고(물론 반항하는 영주는 제거되겠죠) 새로운 왕조로 충성을 옮길 뿐입니다.

중세가 지나가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점차 모든 영주의 독립성이 상실됩니다. 이제 영주는 토지 수조권 외에 나머지 독립적 권력을 박탈당하죠. 그러면서 왕권의 중앙집권화가 발생합니다.

이와 동시에 세력을 확대한 왕국 내 영주 가문 사이에 활발하게 혼인이 일어나면서 하나의 동포가 됩니다. 이런 동포를 형성하는 것은 역시 결혼의 관계입니다. 이런 식으로 중세의 봉건적 민족국가가 완성되죠. 대개 15~16세기가 되면 서구든 아시아든 봉건적 민족국가가 출현합니다.

▲ 사진 : 구글 검색

3) 향토애와 민족의식

중세 봉건적 민족국가의 특징은 도시가 아니라 영토(Land; 지방, 향토)가 중심이 된다는 겁니다. 생산력이 이 영토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질 좋은 땅을 차지한 사람들은 여기에 자부심을 느끼겠지요. 사람들은 자기 땅에 대해 애착을 느끼고 향토애가 발전하게 되죠.

봉건적 민족국가에서 하나의 민족은 혈연관계 이상으로 이런 향토에 대한 애착과 연결됩니다. 중세의 시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향토애 정서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중세 봉건국가에서 결혼 관계는 주로 지배층인 영주들 사이에서만 일어날 뿐 피지배민인 농민은 거의 대부분 자기가 태어난 영지 내에서 결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의식은, 즉 하나의 동포라는 의식은 주로 지배층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피지배층인 농민은 자신을 지배하는 영주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거나 또는 외적이 침략해 올 때 느끼거나 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농민의 민족의식은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만큼 피지배 농민에게 민족의식은 대체로 약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고대 민족은 자기 고유의 언어를 가졌습니다. 한 민족, 한 언어라고 말할 수 있죠. 영토에 기초한 새로운 봉건적 민족은 각기 자기 언어를 지닌 고대 민족의 결합을 통해 형성됩니다. 이때 점차 언어가 하나로 통일됩니다.

주로 정복 왕조의 고유 언어가 전체 봉건 민족의 고유 언어가 됩니다만, 예외적으로 피정복 왕조의 언어가 지배 언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어떻든 하나의 민족 언어가 형성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스탈린은 민족의 징표로 혈연을 제거하고 언어를 들고 있습니다. 언어가 민족의 징표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언어란 곧 지배를 의미합니다. 지배자의 언어가 봉건 민족 전체의 언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혈연이란 피가 뒤섞이는 것이므로 평등성을 내포합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 혈연이 민족의 징표로서 더 적절하다 봅니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민족 개념의 가치는 이런 민족 성원 간의 평등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여성이 민족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민족의 징표가 혈연관계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4) 지정학적 요인과 상업적 교환

봉건적 민족은 이렇게 출현했습니다. 여기서 여러 고대 민족이 결합해 하나의 봉건 민족이 만들어졌고 봉건적 민족 개념 속에는 혈연이라는 차원에 또 하나의 차원 즉 향토애라는 차원이 중첩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세의 모든 국가가 이렇게 봉건적 민족국가로 나간 것은 아닙니다. 정복왕의 영토에 대한 야심은 처음부터 이런 민족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나간 것은 아니었죠. 어찌 싸우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 정확할 겁니다. 그 가운데에는 독일제국처럼 거대 제국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세에 서로 경쟁하던 왕국들은 결국 하나의 영토에 기초한 국가(후일 봉건 민족국가)로 귀착되었습니다. 그 귀착된 결과를 살펴보니 하나의 영토는 일정한 토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영토가 확정되는 데는 정복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지정학적 요인(강과 산맥, 바다라는 자연적 경계선)이 아주 클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런 지정학적 요인 밑에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겠죠. 즉 생산력이 좋은 토지였던 파리 인근을 중심으로 지역 간에 일정한 상업적 교환관계가 형성되었지요. 시기적으로는 중세에서 현물지대가 출현한 이후 즉 12세기 이후입니다. 본격적으로는 현금지대가 나타나는 14~15세기경입니다. 이런 상업적 교환이 지역 간의 통합을 이룩했고 이것이 봉건 민족국가의 영토였던 것이죠.

자본주의 시대 들어와서 부르주아 민족이 새로이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또 다음에 해야 하겠네요. 이제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민족 개념이 출현합니다.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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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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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8-02-12 20:02:36

    저기 민플직원들~!!!! 2002년 DMZ를 넘어 25분만에 한국군초소를 밟아 귀순한 탈북병사출신인 주승현(본명 주성일)이 쓴 조난자들이라는 책을 사서 읽어보시면 어떨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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