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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촉감, 구름 향기 같은 이 지상의 노래‘문득 당신’ 그리움으로 노래하는 가수 이지상 17일 라이브콘서트

‘스파시바.’

달리의 콧수염처럼 멋들어진 수염 하나 달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오른손을 치켜들며 쾌활하게 소리치는 러시아 남성의 목소리 같은 인사를, 그는 곧잘 한다.

그가 (사)희망레일 대륙학교의 듬직한 교장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러시아 우수리스크 시장에서 만두집 아주머니가 건넨 ‘쓰파씨~바’ 인사를, ‘욕설’과 비슷한 발음으로 듣는 순간 느낀 카타르시스의 즐거움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영하 40도 시베리아를 경험해본 그에게 세상은 훨씬 매섭고 두려운 존재라는 걸, 그래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대견하고 고맙기 때문이리라.

그의 노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은 더 단단해지고, ‘고맙습니다’라고 번역되는 ‘스파시바’에 담겨진 마음이 짠하고 진하게 다가온다.

누군가는 그를 ‘꿈꾸는 사람’ 같다고 한다, 그의 노래에서 ‘애틋한 연정이 서정적인 선율과 어우러질 때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한다. 또 그의 노래에서 진심을 읽는다고도 하고 '음유시인'이라며 아예 단단한 감투 하나를 씌워주기도 한다.

나는, 그의 노래에서 바람소리와 구름 떠다니는 소리를 듣는다. 볼 수는 없지만 촉감을 주는 바람과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구름. 세상의 향기와 생명들의 감촉을 전해주는 바람과 헤어져서 서글프고, 억울해서 목 놓아 울고, 다정해서 아름답고 예뻐서 즐거운 세상의 일들을 둥둥 떠다니며 봤던 풍경 그대로 들려주는 듯하다. 아픈 곳, 슬픈 일, 행복한 곳, 좋은 일의 이야기를 감정이 섞인 목소리가 아닌, 아주 객관적이고 편안한 목소리로 전해주니까. 그래서 어디든 가는 바람, 어느 하늘에서든 다닐 수 있는 구름이 그의 노래의 모양이고 색깔이다.

1991년 ‘전대협노래단’을 준비하다가 ‘서총련노래단’에서 출발해 노래패 ‘조국과 청춘’, ‘노래마을’에서 역사를 노래하고 시대를 노래하고 사람들을 노래했던 음악인 이지상.

그가 5집 ‘그리움과 연애하다’를 내고 ‘문득 당신’이라는 타이틀로 12년 만에 개인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름날 초록이 풍성한 나무그늘 아래 누워 참한 바람결을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구름을 보는 모습이 연상됐다. 가을이나 겨울쯤에서 들으면 좋을 법한 그의 음색이 여름날에도 어울릴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오십 줄인데도 100미터에서 보면 여전히 순박한 청년 같은 분위기로 앉아있는 그에게 반가움을 앞세워 콘서트 타이틀이 왜 ‘문득 당신‘이냐고 물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멋쩍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당신은 2인칭이죠. 당신이라는 말을 꼭 한 사람에게만 쓰진 않잖아요. 당신이라는 말은 그 안에 숨겨진 숱한 인연들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그 한 사람이죠. 구의역에서 봤던 그일 수도 있고, 불광동에서 만났던 그일 수도 있고. 2인칭인데 사실은 2인칭이 아닌 거죠. 그러면서도 2인칭이 되어야 하는 말이죠. 숱한 인연들은 3인칭이죠. 3인칭인 숱한 인연들을 2인칭으로 끌어들이는 유일한 말이죠. 당신이라는 말이.”

다수의 사람을 바로 앞의 너로 불러들이는 말인 ‘당신’이라는 낱말이, 모르는 다수의 사람일 수 있는 누군가가 나와 상관있는, 내 앞의 ‘너’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물코처럼 연결돼 있고 그래서 너와 내가 우리가 된다는 아주 상식적인 생각인데도 그의 ‘문득 당신’에 대한 풀이는 깊었다. 그리고 그가 왜 그의 명성에 비해 적은 대가에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 무대에 서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일 수도 있는 수많은 ‘당신’에 대한 애정과 진심 때문이라는 것을.

그의 노래는 유독 시로 된 가사가 많다.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는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다. 춘천역(신동호 시), 토막말(정양 시), 첫마음(정채봉 시) 등 그가 발표한 음반에 실린 노래 중 60%가 시노래다.

시로 노래를 만든 이유로, 노랫말 쓰는 게 어렵다고 했지만 그가 작사, 작곡한 ‘무지개’나 ‘사랑’ 등은 여느 시인의 그것만큼 좋다.

그도 그럴 것이 ‘한라산’을 쓴 이산하 시인, 정호승 시인, 류시화 시인 등 많은 작가들을 배출한 경희대 국문과 출신이다.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와 ‘스파시바 시베리아’ 두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본인의 노래가 대중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늘 신곡이라고 하지만 굳이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노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그는 열심히 노래하고 찾아주는 곳에 가서, 또는 자신의 노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노래 부르면 되는 거라고 한다.

‘먹고 살만큼 굶지 않고 노래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그가 후배들을 위해서 예술인협동조합을 제안한다. 우스갯소리로 ‘복권 한 장 맞으면’ 당장 공연장을 세우고 조합을 만들겠단다. 생계보장도 되고 함께 녹음작업도 하고 음반을 만들고 공연도 기획해서 수익도 내는 그런 예술인조합 말이다. 사실 지자체에서 10억 정도 예산을 만들어 3년 간 이런 사업을 한다면 참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단다.

러시아에 갔을 때 놀란 것 중 하나가 인구 50만 도시에 극장이 7개가 있었는데 관객이 매일매일 꽉 찬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7개의 공연을 다 본다는 계산이다. 그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도 크고 예술인의 가치도 높은 러시아가 참 부러웠다고 한다.

한번은 방송국 음악피디를 하는 후배에게 농으로 ‘내 노래는 왜 안틀어?’라고 하자 ‘형 노래는 어려워요’라고 말했단다. 음악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어려운 음악(?)을 만드는 그가 씁쓸히 웃는다.

같은 길을 걸어온 후배들을 보면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서 노래하는데 선배 입장에서 길을 터주는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쉽지가 않단다. 변명을 하자면 순수예술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지만, 웃으면서 그저 열심히 하는 것뿐이고 그걸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공연뿐 아니라 강연도 한다. 성공회대 교양학부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사’를 강의한다. 강의라는 게 이야기하고 기타치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어 한단다. 그게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의 음반은 3천장 정도 나갔고 책도 그 정도다. ‘3천장이면 꽤 많이 나가지 않았냐’는 물음에 ‘예전에 서태지 음반이 100만장 정도 나갔으니 물론 다르긴 하겠지만 정말 작은 거‘라고 한다. 괜한 질문이었다. 괜히 속만 상하게.

그래도 그는 웃는다. 구릿빛 얼굴이어서 더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웃는 그 얼굴이 나이에 맞지 않게 해맑다. 6월 17일 아주 오랜만에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와 노래로 채워낼 콘서트 ‘문득 당신’에서도 그의 건강한 모습은 빛날 것이다.

권미강 기자  kangmomo8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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