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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 제국의 중남미 침탈사(3)파나마,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 김영준 담쟁이기자
  • 승인 2017.12.0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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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은 절대적으로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요약과 인용의 경우 모두 괄호에 페이지를 표기했습니다. 다른 텍스트를 참고한 경우에는 따로 표기했습니다.)

쿠데타 개입, 반군 육성, 민간인 학살·고문 등 미국이 비록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찾아보면 그에 못지않게 선행도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인데 한쪽 면만을 부각해서는 진실이 호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이승만의 공을 찾아낸들 이승만이 ‘독재자’라는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마치 일제 지배도 찾아보면 좋은 점이 있다는 식의 이런 접근은 ‘객관성’을 핑계로 우리가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논리의 빈약함을 짚는 건 이 정도로 하고, 다시 미국의 선행 이야기로 돌아가자.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확산은 미국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주요 논리였다. 미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가난한 나라에 경제 원조를 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부정선거나 인권유린을 바로잡고, 마약과의 전쟁 등 범죄행위에도 맞섰다. 파나마에선 독재자 노리에가를 체포하고, 엘살바도르에는 40억 달러, 콜롬비아에는 50억 달러를 지원했다. 우린 이런 제국의 선행을 어떻게 봐야 할까?

파나마 : 제국, 독립 국가를 세우다

▲운하를 위해 세운 국가 : 파나마는 1903년에 콜롬비아에서 강제 분리되어 독립국이 되었다. 미국은 분리 독립을 위해 파나마 반군을 육성했다. 1903년 11월, 파나마 반군이 독립선언을 하자 건국 비용으로 1000만 달러도 제공했다. 이렇게 파나마가 콜롬비아에서 독립하게 된 것은 바로 ‘운하’ 때문이었다.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관통하는 최단거리 수송로가 필요했고, 콜롬비아의 파나마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콜롬비아 의회는 미국과의 조약 비준을 거부한다. 미국은 파나마를 분리 독립하는 길을 택했다. 독립 후 미국은 파나마공화국과 곧바로 협정을 맺어 파나마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얻는다.

1968년 파나마공화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토리호스는 빈민구제와 학교 증설, 토지개혁 등 사회개혁과 더불어 파나마운하에 대한 주권을 주장한다. 1977년 카터 행정부는 토리호스와 파나마운하 반환협정을 체결한다. 1999년 12월31일 자정까지 파나마운하와 미군기지 등 파나마에 대한 모든 권한을 반환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군부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고 1981년 7월 토리호스는 의문의 비행기 폭발 사고로 사망한다.(131~134)

운하 때문에 만든 국가가 감히 ‘진짜 주권’을 주장한 후과였다.

▲파나마운하 협정에 서명하는 지미 카터 미 대통령과 오마르 토리호스 장군

▲버려진 독재자, 노리에가 : 토리호스 뒤를 이어 노리에가 정부가 들어선다. 그는 아메리카 군사학교(SOA)에서 훈련받았고, CIA 첩자 노릇을 했다. CIA의 보호 아래 마약계의 큰손 역할도 했다. 그런데 1988년 이후 미국은 자신의 하수인인 노리에가를 축출하기로 마음먹는다. 노리에가는 무엇 때문에 주인에게 버려진 걸까? 그는 연간 수십억 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제2의 운하 건설을 위해 일본기업과 협상을 벌였다. 게다가 파나마운하 지대에 있는 아메리카군사학교(SOA) 이전 시한 연장도 거부했다. 1999년에 운하를 반환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통제 안 되는 하수인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1984년 아직 미국과 노리에가가 밀월관계였을 때, 미국은 부정선거로 당선한 노리에가를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1989년 5월 대선은 정반대였다. CIA는 파나마운하 지역 조차권 연장을 주장하는 엔다라 후보 당선을 위해 1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러한 선거개입과 함께 미국 주류언론은 노리에가의 마약밀매, 인권탄압, 부정선거 등을 연신 보도했다. 용도폐기가 결정된 노리에가는 천하의 악당이 되었다.(135~139)

▲미군의 파나마 침공 : 선거공작이 실패하자, 미국은 군사침공에 나선다. 1989년 5월, 1300명이던 파나마 주둔 미군이 2000명 이상 늘어났다. 10월에는 파나마 군지휘관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불발로 끝났다. 쿠데타가 실패하자 미국은 1989년 12월20일 새벽 1시 스텔스 폭격기와 함께 2만7000여 명의 지상군을 투입한다. 주거지역에 무차별 공습이 이뤄졌다. 미국 주류언론은 민간인 희생은 외면한 채 스텔스 폭격기의 정밀폭격을 자랑하기 바빴다. 결국 노리에가는 붙잡혀 미국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외국 주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국제연합 헌장은 제국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항복 후 노리에가의 상반신 사진

미군의 폭격으로 1만여 명의 파나마인이 죽었다. “노리에가 한 사람을 잡기 위해 무고한 파나마 시민을 희생시킬 만한 이유가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부시의 대답은 걸작이다. “모든 인명은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139~141)

엘살바도르 : 내전이라는 이름의 학살

▲민중 저항과 학살 : 인구 700만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의 현대사는 소수 기득권에 맞선 민중들의 투쟁과 학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32년 4만 명의 민중봉기 이후 독재자 마르티네스의 3만 명 학살, 1981년부터 1992년까지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의 저항과 우익 군·경의 테러 및 학살이 그것이다. 이 12년간의 시기를 국제사회는 엘살바도르 내전이라 불렸다.

내전시기 우익 군·경은 좌익 게릴라(FMLN) 출몰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좌익분자로 몰아 무차별 학살했다. 엘모조테 학살이 대표적이다. 1981년 엘살바도르 정부군은 엘모조테 마을의 주민 1000여 명을 학살한다. 12세 이상의 여성은 강간한 뒤 살해됐다. 시신은 화장됐다. 이들 정부군은 아메리카군사학교(SOA)에서 교육받은 군인들이었다.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레이건 정부는 엘살바도르에 자금과 물자지원, 특공대 훈련 지원 등 모두 4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엘살바도르의 엘모조테 학살 추모비

당시 미국 정부는 엘모조테 학살을 “공산 게릴라와 정부군 사이의 교전 과정에 발생한 것”이라며 개입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2004년 10월 TV대담에서 미국 부통령 딕 체니는 “우리가 7만5000여 명의 살바도르인을 죽인 것은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해 학살 개입을 시인했다. 엘살바도르 내전은 미국과 우익에 의한 일방적 학살극이었다. 국제사회가 말하는 ‘내전’이라는 규정은 이러한 민중학살을 합리화하기 위한 표현에 불과하였다.(142~145)

콜롬비아 : 마약 근절을 위한 50억 원조

▲유혈 내분 : 콜롬비아는 거의 60년 동안 유혈 내분을 겪는다. 발단은 1948년 친미 계열인 보수당에 맞선 자유당 후보 가이탄이 선거전 암살되면서부터였다. 그는 미국계 기업 및 소수 기득권이 독점한 농경지를 환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희망이 꺾이자 항쟁이 폭발한다. 우익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무려 20만 명이 희생된다. 60년대에는 정부에 맞서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민족해방군 등이 조직된다. 콜롬비아 정부군은 더욱 무차별적인 학살로 대응했다.

▲미국의 원조 : 냉전 이후 미국은 콜롬비아 평화 안착과 마약 근절을 명분으로 콜롬비아 계획(Plan Colombia)을 수립한다. 이에 따라 미국은 클린턴 시절부터 부시 행정부 때까지 7년 동안 콜롬비아에 50억 달러를 지원한다. 블랙호크 헬기 등 각종 공격용 무기 13억 달러어치, 아메리카군사학교(SOA) 콜롬비아 지휘관 훈련비용 14억 달러 등 군사원조가 이어졌다. 연간 1만3000명의 군인이 미군 당국에게 훈련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작전지휘, 정보, 병참, 보급, 심리전 등 군의 핵심 부문을 담당할 미군 지휘관도 따로 파견했다.

이 모든 게 단지 마약 근절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의 원조가 늘어날수록 코카인 수확량은 줄지 않고 코카인 재배면적만 증가했다. 콜롬비아 정부군과 민병대에 의한 민간인 사망·실종자도 급증했다. 애초 국제사회에 미국이 발표한 “콜롬비아 계획”대로라면 지원액의 68%는 경제 재건에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입한 50억 달러의 85%는 민중 탄압에 쓰였다. 덕분에 노동자, 농민 그리고 비판적 지식인 등 매년 3000명 이상이 살해되거나 실종되고 있다.(149~153)

만약 미국이 콜롬비아에서 벌인 마약과의 전쟁의 성적을 매겨본다면 어떨까? 아마 ‘마약근절’ 영역은 낙제일 것이다. 하지만 ‘민중학살’ 영역에서 만큼은 단연 우수하다. 미국은 원조를 통해 미군 학교에서 훈련받고, 미군 지휘관을 따라, 미국제 무기를 들고 자국민을 학살하는 괴물들을 만들었다. 다만 그 괴물들이 니카라과에서는 반군이었다면, 엘살바도르와 콜롬비아에선 정부군이었던 것이 유일한 차이였다.

과연 제국에게 중남미 민중의 가치는 얼마였을까? 니카라과 10억 달러, 5만 명 학살, 엘살바도르 40억 달러, 7만5000명 학살, 콜롬비아 50억 달러, 20만 명 학살 중남미 민중의 목숨값이었다.

김영준 담쟁이기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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