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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동의 신간서평]환자의 눈으로 병원을 보다<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신간 서평은 현재 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편집주간으로 있는 이규동님이 최근의 신간들 가운데 ‘돋보이는 책’을 선정해 격주로 집필해준다.[편집자]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지은이 강주성/ 출판사 행복한책읽기/ 정가 15,000원

우리는 그때, 마포의 오피스텔을 얻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운영하던 출판사를 막 접은 그와 오랜 잡지사 생활을 정리하고 프리랜서 일을 하던 내가 의기투합 끝에 내린 짬짜미였다. 출판기획이나 기업홍보를 하는 일종의 기획사였다. 몇 권의 책을 계약해서 내기도 하고, 공공기관의 홍보를 대행하는 공개입찰에 참여하기도 했다. 신생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이벤트를 기획해서 제안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야심찬 출발과는 달리 신통방통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이야 오피스텔이라지만 스무 평도 안 되는, 그야말로 골방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아이디어회의라는 명목으로 말도 안 되는 썰을 풀거나, 그때 막 시작된 컴퓨터통신에 접속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것도 지루하면 지하의 횟집이나 고깃집에서 낮부터 술자리를 만들고 신세타령을 했다.

그는 간간이 병원에 들렀다가 온다며 늦은 출근을 하곤 했다. 허벅지 쪽에 통증이 있어서 양말도 혼자 못 신는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떤 날은 침을 맞고 오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물리치료를 받거나 엑스레이를 찍었노라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술잔을 기울이고 낄낄댔다.

그날도 병원에 들렀다가 검사결과를 보고 온다고 하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되도 사람은 나타나질 않고, 대신 전화통이 울렸다.

“병원에서 백혈병이라고 그러네. 좀 더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애.”

그는 남의 얘기처럼 말했다. 얼마 뒤 다시 골수검사까지 받고서야 확진판정을 받았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염색체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거라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의사도 모른다고 했다. 멀쩡하던 생활인이 하루아침에 백혈병 환자 신세가 된 것이다. 우리의 푸른 동거도 그 길로 끝이 났다. 1999년의 일이다.

햇살이 더럽게도 강하게 내리쬐던 그해 7월, 그는 여동생의 골수를 이식받았다. 골수가 일치할 확률은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의 경우 2만분의 1, 형제는 4분의 1이라는데, 가까이서 맞는 골수를 찾은 건 지독한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었다. 무균실에서 한 달 동안 외로운 사투를 벌인 끝에 그는 마침내 돌아왔다. 비록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질 대로 너덜너덜해졌지만.

면역기능이 약해진 탓에 어린애처럼 살아야 했다. 신생아들이 자라면서 맞는 BCG나 DPT, 소아마비. 수두 같은 각종 예방접종도 때맞춰 새롭게 맞았다. 입안이 헐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영양제에 의지하며 살았다. 눈과 이마에 대상포진이 와서 오른쪽 눈의 시력은 거의 잃은 시각장애인이 되었고, 안구건조가 심해 지금도 인공눈물을 넣으며 산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러는 동안 응급실을 비롯한 각종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같은 처지의 환자들도 숱하게 만났다. 자연스럽게 국민의 건강권보다는 의료계의 영리화 편에 선 정부, 병원과 의료진의 불합리와 부당함, 침해받는 환자의 권리에 대해 눈뜨게 되었다.

백혈병 환자 환우회를 만들었고, 글리벡 약가 인하를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글리벡은 백혈병치료제다. 여러 사정으로 골수이식을 하지 못하는 환자는 평생 이 약을 먹어야 한다. 문제는 가격. 한 알에 2만 2005원으로 하루에 네 번 먹어야 하니 하루치 약값만 10만원이다. 보험적용도 되지 않고 수수료가 많이 들어서 신용카드를 안 받는 약국도 있었다. 치료제가 있는데도 돈이 없으면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약가 인하와 보험적용을 위한 싸움의 맨 앞에 섰다. 성치 않은 몸으로 그렇게 3년을 싸워서 지금은 자기부담 한 푼 없이 환자들이 약을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를 의료투사로 비쳐지게 한 시발점이다. 이 지난한 싸움은 그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의 상황과 제도에 눈 뜨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아예 환자의 권리를 위한 시민단체면서 보건의료운동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끌었다. 오늘 소개하려는 <대한민국병원사용설명서>의 저자인 강주성의 지나온 얘기다.

‘의료의 중심은 환자! 환자의 눈으로 보고 말하는’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 <대한민국병원사용설명서>의 초판은 이미 지난 2007년에 출간되었다. 앞에서 저자의 백혈병 투병기와 보건의료운동 얘기를 길게 늘어놔서 백혈병 환자들을 위한 치료안내서 같은 게 아닐까 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봐 슬며시 걱정이 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처방전은 두 장이다’ ‘병원이 대부업체냐, 입원보증금’ ‘치료비보다 숙박비(?)가 더 많다’ ‘불법 청구의 대명사, 선택진료비’ ‘환자에게 비용 부담케 하는 병원 물품비’ ‘ 항생제와 주사제 이야기’ ‘ 학력문진 이야기’ ‘의료계의 블루오션, 비급여’ ‘비급여 그리고 본인 부담금 상한제’ ‘ 의료사고, 그 백전백패의 슬픔’ ‘혈액, 안전하거나 위험하거나’ ‘다국전 제약회사의 횡포, 약값이야기’ ‘국민건강보험 VS 민영보험’ ‘의료공공성 파괴하는 영리법인 이야기’ ‘진실 혹은 거짓, 의료 광고 이야기’…. 목차의 일부를 대충 적어봤지만, 이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병원이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쯤 될 것이다. 이들 모두가 실제로 현장에서 겪은 일이거나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동안 환자들의 상담을 통해 확인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환자의 편에서 병원을 해부한 일종의 르포르타주라 부를 만하다. 딱딱할 법한 주제임에도 술술 읽히는 까닭은 바로 그 현장에 바탕을 둔 체험이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그 이유를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난 의사도 아니고, 약사도 아니다. 보건의료 정책을 전공한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난 그저 백혈병에 걸린 환자일 뿐이다. 전문가가 아닌 환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환자의 처지’에서 ‘환자의 눈’으로 보고 말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담은 글의 주제가 매우 전문적인 것임에도 일반인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나마 쉽게 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전적으로 기인한다.”

지난해 여름, 초판이 나온 지 8년 만에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다. 그 사이 중증환자의 본인부담금이 10%에서 5%로 줄고, 병실도 4인실까지 보험 적용이 되었으며, 선택진료비도 약 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율은 65%에서 62%로 오히려 줄었다는 데에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 그 원인을 저자는 환자도 모르게 도처에서 생긴 비급여 항목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의료상황은 더 악화되었으며 그 책임감 때문에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초판을 그대로 재출간한 것은 아니다. 시의성에 맞지 않는 원고는 빼고 대신 새로 쓴 원고들을 채우고, 그동안 바뀐 법령과 제도 등은 현재에 맞도록 손을 봤다. 경남 창원에 있는 환자 중심 병원인 희연병원의 입원기 등이 실려 있는 3장 ‘우리들이 만드는 희망 의료’ 부분은, 의료운동에 몸담고 활동해온 저자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대안이기도 하다. 개정판이 초판을 넘어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흔히들 병원과 경찰에 아는 사람이 하나쯤 있어야 편하다는 말을 한다. 그래야 대접도 받고 편의도 챙길 수 있다는 말일 텐데,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막상 일이 닥치면 사방팔방 연줄을 대고 알음알음으로 사람을 소개받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 중 하나를 해결해 준다. 병원 말이다. <대한민국병원사용설명서>라는 제목 그대로 환자가 어떻게 병의원이나 약국을 이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병의원이나 약국의 갑질 횡포로부터 피해 보지 않는지 현장성을 곁들여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이런 책 많지 않다.

저자는 이 개정판의 출간을 계기로 보건의료운동의 제2라운드를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의사가 포함된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시민과 의사의 이해관계가 100% 맞아떨어질 수는 없지만, 최근에 나오는 원격 의료 등은 둘의 이해관계가 맞기에 함께 연대해서 정부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길고 지난한 싸움이 되겠지만 나는 그의 의지를 믿는다. 지금껏 그래왔으므로.

병원이용법 TIP 1. 입원할 때 환자(보호자)의 알 권리

외래와 응급실 진료를 통해 입원치료가 결정되면 주치의가 입원결정서를 작성하여 원무과 입원계에서 입원 수속을 한다. 보통 입원수속 창구에서 입원 약정서를 작성한 후 건강보험증을 보여주고 입원 약정서는 제출된다. 이때 어떤 병원에서는 입원과 수술 보증금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는 불법이다. 만약 거부한다고 해서 입원을 안 시키면 ‘치료 거부’가 된다. 복지부와 관할 보건소에 신고한다.

입원을 하면 병실이 결정되고 병동 간호사에게 입원 결정서를 제출하면 입원 생활에 필요한 사항을 듣게 된다.

병원이용법 TIP 2. 선택진료 신청서 작성할 때 주의할 점

선택진료란 환자 또는 그 보호자가 특정한 의사를 선택하여 진료를 받는 제도로, 선택진료를 받으면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범위의 추가비용을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되기 때문에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선택진료를 하려면 수납 창구에 비치된 선택진료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해당 과의 선택 의사 이름을 쓸 때 본인이 직접 자필로 쓰는 게 좋고, 나머지 빈 칸은 줄을 그어서 다른 이름을 타인이 의도적으로 써넣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간간이 다른 빈칸에 병원이 자신들의 불법을 감추기 위해 직접 의사 이름을 써넣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명 역시 꼭 해야 한다. 필수다. 이외에 선택진료 신청서를 작성한 적이 없는데도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저자 강주성은 1999년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다. 골수 이식 후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약가 인하 싸움을 근 3년여 하면서 ‘전국 백혈병 환우회’를 만들었다. 현재의 보건의료운동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는 그가 환우회 창립 이후에 환자의 권리를 위해 만든 시민단체다.

현재 환자들이 제도적으로 누리는 본인부담금 상한제, 중증질환 등록제, 암 등 중증환자의 본인부담금 인하와 장기노인요양보험의 입법화, 병원환자 식대의 급여화, 전체 약가의 인하, 혈액관리의 제도개선 등 이 단체의 실천적인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은 이외에도 많다.

그 활동의 중심에 서있던 저자는 2008년 초 보건의료계를 떠났다가 최근 다시 의료보건 활동의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 이규동 '유레카'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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