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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케인즈의 '평화의 경제적 결과'

존 메이너드 케인즈, 『평화의 경제적 결과』

(부글 클래식 출판/정명진 번역)

이 책은 경제학자 케인즈가 영국 재무성의 수석대표로 참가했던 1918년 베르샤이유 회담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 책에는 역사의 흐름과 세계 정치질서를 바라보는 케인즈의 탁견이 담겨 있는데, 냉전시대를 살고 있는 한반도의 진보주의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약관 37세의 케인즈는 191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베르샤이유 회담에 영국 재무성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회담 내용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이 패전국 독일에게 어떤 전쟁 책임을 물릴 것인가 였다. 3개국 협상 대표는 요즘의 한국 돈 400조 원에 해당하는, 250억 마르크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독일에게 물리려 한다. 또한 독일 내부의 금과 유동자산을 동결시켜 승전국에게로 이전하려 한다.
케인즈는 이런 협상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고선, 전쟁 배상금을 10억 마르크 미만으로 삭감시킬 것과, 독일의 유동자산을 동결시키지 말 것, 그리고 승전국이 패전국의 경제 재건에 참여하여 재건에 도움을 줄 것을 주장한다. 승전국 국가수반들은 젊은 경제 관료 케인즈의 주장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앉는다. 결국 케인즈는 협상 자리를 박차고 나와 프랑스를 떠나게 되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집필한 책이 바로 『평화의 경제적 결과』다.

책의 전반부에는 케인즈와 승전국 수반 사이의 서로 다른 역사 인식이 서술되어 있다.
승전국 수반들의 경우 국가 사이의 <대립성>에 주목하고 있다. 즉 프랑스의 클레망소 총리나 영국의 로이드 죠지 수상,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모두 독일이 2류 국가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독일이 다시 부강해지면 다른 강대국의 안정을 위협하는 적성 국가로 부상할지 모르고, 반대로 독일이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할 때 세계평화가 유지되고, 자기 나라가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 이들이 독일에게 엄청난 배상금을 물리려는 까닭은 독일의 재건을 방해하고, 전쟁 배상금으로 자국의 이득을 도모하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세계역사에 대한 <정치 현실주의>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 현실주의란 인류 역사가 한편에선 갈등과 협력이, 다른 한편에선 전쟁과 평화가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과정이라고 본다. 즉 세계사란 여러 국가들이 당구대 위의 당구공처럼 계속 부딪치고 튕겨나가며,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그래왔듯, 미래에도 전쟁과 갈등의 양상이 반복적으로 진행될 것이기에, 한 나라의 번영은 그 나라의 안보에 잠재적 위험을 간직한 다른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도록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즉 프랑스나 영국의 입장에선 인접 국가인 독일이 가난한 2류 국가로 머무를 경우 발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과연 이런 관점이 맞는 것일까? 케인즈는 “천만에!” 라고 답한다. 국가 사이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 이런 관점은 <경제성장>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낡은 역사관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케인즈에 따르면 인류 역사란 국가 간 협력에 기초하여 경제성장을 이루어온 <상호 의존적> 체제로서의 역사다. 인류에게 ‘경제성장’이라는 관념이 없었을 무렵, 한 나라의 부는 이웃나라의 땅을 빼앗고,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아서 자원과 노동력을 갈취할 때 비로소 달성된다고 믿어졌다. 이런 역사 인식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기원전 2세기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진 포에니 전쟁이다. 승전국 로마는 패전국 카르타고의 살을 발라내고 뼛골까지 우려내어, 카르타고가 국가의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조처했다. 로마는 이런 전쟁 승리의 방식을 포에니 전쟁적 정의관(poenic justice)이라고 명명했는데, 향후 벌어진 모든 전쟁에서 상대 국가에게 이 같은 정의관을 적용하여, 패전국에게 강력한 배상 책임을 물었고, 그 결과 로마는 번영과 부국강병의 길을 걷게 되었다.
케인즈는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수반들이 바로 포에니 전쟁적 정의관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이를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낡은 정의관을 가지고선 결코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이 책의 2부에서 케인즈는 1870년 알사스-로렌 지역의 영토권을 놓고 벌어졌던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을 고찰하고 있다.
전쟁의 승전국인 프로이센이 패전국 프랑스에게 엄청난 배상금을 물렸는데, 이는 포에니 전쟁적 정의관에 입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배상금 정책의 결과 프랑스 내부에선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승전국인 프로이센조차도 대외 지불 불균형을 초래하여 재정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결론적으로 일정한 발전 단계를 경과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상호의존적 경제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웃 나라의 빈곤과 인플레는 인접한 나라의 경제발전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일예로 한국처럼 일정 수준의 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한 국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경제적 부나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이웃나라의 경제 활성화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웃나라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제가 사회주의체제여서 상호 교류가 없던 70년대, 80년대와 비교하자면, 현재 이 두 나라와의 사이에 활발한 경제협력과 무역교류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케인즈는 이런 상호의존적 경제체제의 원리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과 패전국 사이에서도 잘 형성되어 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독일이 이웃 나라로 있는 것보다는 부유한 독일이 이웃 나라로 있을 경우, 영국이나 프랑스는 경제성장에의 힘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지식과 기술 발전의 측면에도 마찬가지다. 이웃 나라에서 새롭게 개발된 기술이 있을 경우, 한 나라는 그 나라로부터 쉽게 신기술을 모방하여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반대로 이웃 나라가 기술 발전이 전혀 없는 후진국일 경우 한 나라는 상호 상승적인 기술 발전에의 기회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케인즈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사이의 대립성보다는 <상호의존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승전국이 패전국 독일에게 가혹한 배상금을 물릴 경우 엄청난 후과로 돌아올 것을 예견하고 있다. 케인즈는 가혹한 배상금 정책을 집행할 경우 결과적으로 독일에서 전무후무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며, 그 경우 독일은 사회주의의 지배를 받게 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케인즈의 예견은 그의 표현 그대로 현실화되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빼앗겨버린 패전국 독일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국가는 노동자의 임금 지불 불능 상태에 빠져서 추가적인 화폐를 찍어내고, 그 결과 화폐가치가 바닥에 떨어져서 다시 화폐를 찍어내는 악순환에 빠진다. 패전국 독일에서는 지폐를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할 정도의 살인적인 물가상승을 겪게 된 것이다.
암흑의 상황에 빠진 패전국 독일은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 사회주의 정당 스파르타쿠스당의 혁명정권 아래 3일 동안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독일 민중은 사회주의를 수용하기보다는 이런 사회주의 운동을 배격하는 극우 나치 정당을 지지한다. 히틀러를 수반으로 하는 나치 정권은 배상금 자체를 원천 무효로 해야 한다는 강령 아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만다. 결국 케인즈의 예견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승전국들은 패전국가인 독일과 일본에 대해서 가혹한 전쟁 배상금을 물리지 않는다. 거꾸로 우호적인 전후복구와 대외 원조를 내용으로 삼는 <마셜 플랜>을 실시한다. 그런 우호의 결과 복구된 독일과 일본은 각각 유럽 경제와 동아시아 경제에서 주변 국가들에게 경제적 견인차로 역할하게 된다. 이런 귀결은 철저하게 케인즈의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예견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케인즈는 일정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 나라는 다른 나라와의 평화협력과 교류를 통해 상호의존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보주의 사상은 인류역사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줄이고 평화로운 공존공영을 가져오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현재 북한은 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체제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은 <김정은 참수작전>이라는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모토 아래 해마다 반복해서 진행되고 있다. 평화와 화합을 통한 공존공영을 도모해야 하는 시대에 왜 유독 한반도에서는 이런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가? 그 갈등의 구조와 원인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케인즈의 교훈으로부터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남 한 소설가 겸 자유 독서가

1983년 서울대 철학과 입학
1990년 미 메릴랜드 대학 물리학과 대학원 수료
소설집 [유다와 세번째 인류]

남 한 소설가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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