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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의 원폭과 강제징용 노동자김이경의 민족이야기 강제징용, 세 번째
  • 김이경 우리역사연구가
  • 승인 2017.02.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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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카미 성당과 피폭 시 폭풍에 곤두박질 쳐진 종루. 옆의 사진은 그 당시 사진

‘나가사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을 제일 먼저 떠오를까? 요즘은 ‘나가사키 짬뽕’이 제일먼저 떠오를 것 같다. 예전에는 ‘원자폭탄’을 연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비참한 피폭도시’라는 이미지는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졌다. 나 역시 나가사키에 가기 전, 징용관련 현장으로만 생각했지, 피폭도시라는 점은 잊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나가사키에 도착하자, 우리가 마주 친 첫 의제는 ‘원폭’이였다. ‘강제징용의 현장’에 왔다는 사실에 긴장하던 우리에게 마치 통과의례처럼 등장한 원폭문제에 얼떨떨했지만 ‘원폭’ 역시 강제징용 문제와 연관된 중요한 키워드였다.

우리를 안내해준 기무라(71세) 선생님이 우리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신 것은 우라카미 성당과 당시 원폭에 날아가 곤두박질 쳐진 그대로 남아있던 안젤라스 종의 종루(鐘樓)였다.

우라카미 성당은 원폭 투하지점 500m 옆에 있다. 그날의 상황을 말해주듯 쓰러진 그대로 누워있는 거대한 종루를 보면서 처음으로 피폭이라는 게 어떤 건지, 천만분의 일이나마 느낌으로 오는 듯 했다. 한수산의 소설 <군함도>에는 피폭의 순간 나가사키의 상황이 나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천신만고 끝에 나가사키로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 지상이 맞닥뜨렸던 당시의 상황을 조금만 옮겨보도록 하겠다.

‘그때 느닷없이 공습경보가 울렸다... 지상은 몸을 돌려 식량영단 대피소로 들어가기 위해 지하계단 앞에 섰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무언가 아주 환한 빛이 번쩍 하는 것을 지상은 느꼈다. 그와 함께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소리가 그의 고막을 찢었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의 몸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눈을 떴을 때는 주위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은 한낮의 태양아래서 황금색이었다.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번쩍이는 빛이 있었는가 하자, 주변은 타오르는 불꽃으로 변했고, 뒤덮인 검은 연기 속에 모든 것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연기 속으로 불빛이 넘실거리고 어딘가에서 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불꽃 때문에 주위가 너무 뜨거웠다. 지상은 토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한수산의 소설 ‘군함도’에서>’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섬뜩했지만, 원폭의 참상보다는 강제노동으로 끌려왔다가 가까스로 지옥 섬 하시마를 탈출한 주인공 지상의 운명이 궁금했다. 지옥 섬 군함도만 탈출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웬걸? 나가사키는 더 큰 감옥이었다. 식민지 노예의 처지란 이런 거구나.. 그 어디에도 자유는 없구나! 그래도 그 시기가 광복이 거의 다가오는 시기였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운 아내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결국 나가사키를 뒤덮은 원폭에 비참하게 희생되는 장면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강제징용, 하시마, 나가사키와 원폭은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우라카미 성당에는 끔직한 그때의 순간 그대로 남겨놓은 형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목이 날아간 동상, 양쪽 두 눈이 타 시커먼 동공이 되어버린 마리아상. 이런 모든 것들이 끔찍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할아버지 아버지 노동자들의 비참한 최후가 더 생생한 표상으로 남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 우라카미 성당에 있는 참혹한 ‘마리아상’과 ‘목없는 성자상’

성당 인근 원폭자료관 입구에는 원폭이 투하되던 바로 그 시간,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멈춘 고장 난 시계가 걸려있다. 잠시 그때로 돌아가 원폭의 잔인함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장면이 슬라이드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원폭 투하 시점으로부터 피폭의 참상, 핵무기 개발의 역사, 핵무기가 없는 평화에 대한 갈망까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전시 해설하고 있지만 정작 왜 그들이 피폭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분석과 반성은 없다. 그러다보니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희생당한 조선인의 이야기가 있을 리 없다. 당시 나가사키 인구의 절반인 14만 7000여명이 죽거나 부상했다. 그중에서 나가사키시가 공식집계한 조선인 원폭피해자는 1만 2000여명.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2만 2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약 10%에 이르는 셈이다. 이처럼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군국주의에 대한 아무런 반성이 없는 <원폭 피해의 나열>이라니.... 함께 간 우리 모두에게 어떤 공감이 형성될 리 없다.

원폭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화장되는 순서를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에 누이동생을 업고 있는데, 여동생은 이미 죽어 있다. 아무런 표정조차 없이 입을 꼭 다문 채 이 상황을 직시하는 소년의 모습에서 어찌할 바 없는 슬픔과 분노가 전해져오는 듯하다. 의미조차 알 수 엄청난 재난! 일본 아이든 조선 아이든, 앞으로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우리의 찜찜한 마음을 아시는지 기무라 선생님이 다음으로 우리를 안내해주신 곳은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모금해 만든 것이라고 하니 조금 얼떨떨했다. 비석에는 ‘추도’라는 두 글자만 눈에 띄게 선명했다. ‘강제징용’이라는 글자는 비석 뒤편에 새겨져 있었다. 일본에 예민한 문제라 앞에는 새겨 넣을 수가 없었단다.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나날이 심해져 언제 일본 우익들이 와서 이 추모비마저 없앨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다.

추모비 앞에 왜 즐비하게 놓인 생수들! 피폭되면 몸속까지 타버리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물을 찾는다고...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곳에 자리한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였지만, 그래도 놓고 간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생수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조금 위안이 되는 듯 했다.

얼마간 찜찜한 마음을 갖고 다음으로 돌아본 곳은 나가사키 평화공원이었다. 원폭에 희생된 분들을 기리며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모아 마련된 추모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 평화의 샘 -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으로 몸속 깊이까지 타버린 피폭자들은 “물을..”“물을..”하고 신음하거나 울부짖으며 죽어갔습니다.....핵무기 금지 세계 평화건설국민회의와 나가사키시는... 기부금을 바탕으로 하여 이 ‘평화의 샘’을 건설했습니다. 오늘 이곳을 찾아주신 귀하께서 명복을 빌어주시고 평화를 기원해 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겠습니다.

여기까지는 공감할 수 있다. 평화공원 도처에 <평화>라는 구호가 걸려있어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라도 이렇게 절절하니 좋은 일이지’라는 생각으로 공원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높이 9.7m의 엄청나게 큰 하늘빛 동상이 눈에 띈다. ‘평화 기념상’이라고 한다. 제작자인 나가사키 출신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보는 이 조각상이 ‘신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의 상징’의 의미라고 말했다. 매년 8월 9일 원폭의 날에는 이 앞에서 전 세계를 향해 평화 선언이 이루어진다고... 근데 ‘평화 기념상이 왜 하필 웃통 벗은 남자상인지 좀 기분 나쁘다’는 생각으로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기무라 선생님께서, ‘근육질의 남성상’으로 만든 까닭을 말씀해주셨다. 일본이 힘이 약해 서양 강대국에게 당한 것이므로 일본도 빨리 힘을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 즉 ‘군국주의화에 대한 강한 지향’이라고 하신다. 퍼뜩 정신이 든다. 원폭 기념관도 그렇고, 이곳 평화공원도 그렇고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했는지, 이제야 그 실체가 확실히 드러났다.

▲ 평화공원, 평화기념상

<평화>라고 다 같은 <평화>가 아니다. 일본이 원폭 피해자들의 희생을 기리며 꿈꾸는 것은 ‘반전(反戰)평화’가 아닌 ‘군국주의 부활과 힘에 의한 세계 패권 장악’기도일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닌 <가짜 평화>였다. 공원 여기저기 붙어있는 <평화>라는 구호를 <반전(反戰)>으로 갈아치우는 운동이라도 벌이자는 목소리들이 높았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도 군국주의에 대한 평가가 한마디도 없듯이 이 평화공원에도 일본인들의 추모만 있을 뿐 조선인 피해자에 대한 공식 기록이 없다.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북한이 세웠다는 조그만 추모비가 있을 뿐, 대한민국은 우리 노동자들의 서러운 죽음에 대해서조차 공식 입장이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징용 노동자들, 사할린 동포들, 식민지배로 당한 국민들의 고통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우리 정부는 어디에 있을까?

▲ 북한이 세운 조선인 추모비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정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는 일. 그것은 결국 과거의 잘못을 은폐하고, 다시 군국주의화를 획책하고 있는 일본과 총체적인 투쟁을 하는 일이며,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수립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다. <투쟁 없는 민주주의>가 헛된 망상이듯이 <투쟁 없는 평화> 역시 군국주의자들의 또 다른 노림수에 불과하다.

김이경 우리역사연구가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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