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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촛불항쟁과 진보정치(2)촛불과 정치혁명②
  • 김장호 편집기획위원장
  • 승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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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은 새로운 정치혁명을 추동하고 있다. 진보정치는 광장의 직접정치가 제기하는 새로운 정치혁명을 어떻게 완수해 낼 것인가. 다양한 모색이 필요하다. 이에 촛불혁명이 진보정치에 던진 화두를 중심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 중간에 누군가 들어와 채워도 무방하다. 반박, 이견, 보완, 시리즈물 등 어떤 내용과 형식도 이 연재에서는 열려있다. 필자의 연재는 꾸준히 이어지겠지만, 함께 만드는 진보정치칼럼을 제안한다.

2006년 민중총궐기, 2008년 촛불, 2012년 진보정당의 함수관계

사진제공 함형재 담쟁이기자

2006년은 한미FTA저지 민중총궐기, 노동개악저지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의 한해였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27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를 발족하고, 11월 22일부터 3차례의 민중총궐기투쟁을 전개하였다. 민주노총은 또한 △비정규권리보장 쟁취 △노사관계 민주화법안 쟁취 △한미FTA 협상 중단 △산재법 개정을 요구하며 총파업투쟁을 벌였다.

2006년 당시 한미FTA저지 민중총궐기투쟁에서 주력은 노농동맹이었다. 승리가 눈앞에까지 왔으나 한미FTA를 최종적으로 저지하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저항세력들이 노농동맹은 형성하였으나, 도시중간층과의 동맹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미FTA저지투쟁은 영화예술인들까지 동참한 광범위한 연대투쟁이었지만 역시 주력은 노동자농민이었다. 투쟁대열은 전국 주요 시도청 앞으로 진격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지만, 결국 한미FTA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노동자농민연대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2006년 당시 도시중간층 시민들은 침묵하거나 방관자에 멈춰있었다.

2008년 갑자기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일면서 촛불시민들이 몰려나왔다. 5월 2일 중고생들의 첫 집회 이후 소박하게 시작된 촛불은 6월 10일 백만이 참가하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2008년 촛불이 타올랐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라는 게 결국 한미FTA 재협상문제였다. 한미FTA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결정판이었다.

2008년 촛불의 주역은 도시 중간층, 시민들이었다. 노동자, 농민 역시 다양한 투쟁으로 결합하였으나 역시 주력은 촛불시민들이었다. 이 시기 노농자 농민은 97년 IMF 이후 10년 이상 끈질긴 신자유주의 저지투쟁을 전개하였고, 그 정점이 2006년이었다. 그 10년 동안 노동자 농민 등 민중단체 조직력은 많이 소진되었다. 2008년 막상 도시중간층들이 촛불을 들고 한미FTA문제에 대한 저항전선을 형성했을 때 노동자 농민 조직들은 너무도 지쳐있었다. 이런 사유로 인해 결국 2008년 촛불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다.

2008년 촛불시민들은 단지 쇠고기만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교육,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노동개악 등 신자유주의로 인한 폐해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었다. 광장은 경찰버스를 잡아당기는 강력한 저항의 장이자 정치토론이 벌어지는 직접민주주의 광장, 노래와 춤, 공연이 벌어지는 대중정치문화의 광장이기도 했다. 촛불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언론은 민주주의 2.0, 웹 2.0 현상이라고 조명했다. ’촛불당‘을 만들자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도 등장했다.

2008년 촛불은 87년 이후 민주주의 한계, 97년 이후 급속히 이식된 신자유주의 모순에 대한 저항, 막 등장한 이명박 보수정권에 대한 반감 등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대한 지향을 광장에 펼쳐놓았다. 그것은 진보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요구였다. 효순이미선이 여중생 촛불에서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정치운동의 주역들이 2008년을 거치며, 새로운 주권자, 새로운 시민들로 전면에 등장했다.

한미FTA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대안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발전한 민중들의 투쟁은 명박산성 앞에 가로막혔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 숙제는 2012년으로 넘겨졌다.

광우병 촛불 이후 노동자, 농민, 도시중간층의 동맹은 정치적 방식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신자유주의에 일부 환상을 가졌던 도시중간층들은 신자유주의가 중산층을 몰락시키고 양극화를 만들어내는 주범이라는 것을 명백히 깨달았다. 이 시기 노동자 농민들은 노농동맹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에 침을 뱉고 돌아선 도시중간층과 굳건한 동맹을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2011년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농민, 도시중간층의 정치적 연합을 형성하고자 했던 새로운 정치실험이었다. 이 노동자, 농민, 시민의 힘으로 몰락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허 위에 새로운 진보정치를 세우고자 했던 중요한 시도였다.

어렵게 출발한 통합진보당이 2012년 선거에서 13석을 획득한 것은 아쉽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실험을 최종적으로는 당내분란과 강제해산이라는 탄압 앞에서 결국 실패로 끝났다.

왜 그랬을까?

평가의 다양한 측면이 있겠지만 본질은 리더십의 문제였다. 통합진보당 실험의 실패에 대해 보다 많은 책임을 져야할 정치집단이 있고, 조금은 덜 책임져도 되는 정치집단이 있겠지만, 크게 보면 결국 함께 지고가야 할 공동의 숙제이다.

그 책임감의 무게는 크고도 깊다. 본질은 진보정치세력이 2006년 민중총궐기투쟁, 2008년 촛불민심을 얼마나 정확히 읽고 철저히 복무하고자 했던가에 있다. 필요한 부분만 자의적으로 읽고 접근하지 않았는지, 민중을 중심에 놓은 운동적 통찰이 아니라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지, 소통과 단결에 더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아야 대목들이 많다.

불행하게도 당시 진보정치세력은 2006년, 2008년의 노동자 농민 도시시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성공적으로 담아낼만한 통일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2015년 민중총궐기, 2016년 촛불혁명, 2017년 진보정당의 함수관계

정치연합에 실패한 노동자, 농민, 도시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정치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는 결국 거리에서 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노동자, 농민과 도시시민들 중에서 조직된 빈민층이 먼저 결집하였다. 이른 바 노농빈 총궐기투쟁이었다.

2015년 노농빈 총궐기 투쟁은 2008년 촛불 이후 가장 격렬하고 폭발적 투쟁이었다. 한상균 위원장이 구속을 감수하고, 백남기 농민이 목숨까지 내민 2015년 민중총궐기 투쟁이 박근혜 정권 집권기의 가장 격렬한 투쟁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쉬운 해고, 전국민비정규직화를 기도하는 노동개악, 민영화, 밥쌀 수입, 개성공단 폐쇄, 교과서 국정화, 세월호 조사위 파탄, 위안부 문제 합의, 사드배치 강행 등 박근혜 정권의 폭압정치가 가장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민중총궐기 투쟁은 2016년 들어 일회성 총궐기 집회가 아니라 총궐기운동으로 발전했다.

2016년 하반기 민중총궐기 투쟁을 불러온 박근혜 정권의 폭정이 사실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의 결과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마침내 도시중간층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2016년 민중총궐기로 기약되었던 11월 12일을 기점으로 촛불은 100만을 넘어섰다. 2016년 11월, 민중총궐기투쟁과 촛불시민은 이렇게 만났다. 조직된 노동빈대오와 촛불시민은 2016년의 광장에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 중고생이 앞장섰고, 대학생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민주항쟁을 경험한 4-50대는 이제 자녀와 함께 광장에 나왔다. 2006년 민중총궐기에 없었던 도시시민들, 2008년 촛불에 잘 보이지 않았던 조직된 대오로서의 노동자, 농민들은 2012년 어렵게 연합했지만 쓰라진 실패로 끝났던 진보정치의 실험을 뛰어넘어 2016년 항쟁의 광장에서 다시 만났다. 민주주의 4.0으로 진화한 새로운 직접정치의 광장에서.

그 속도 역시 질적으로 빨라졌다. 과거 2,3년씩 걸렸던 간격이 이제는 2015년 민중총궐기, 2016년 촛불, 그리고 대망의 2017년으로 넘어왔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이제 진보정치세력이 대답해야 할 차례이다.

노농빈과 도시시민, 중고생, 대학생들이 연합한 촛불혁명, 광장의 직접정치에 진보정치세력은 진보주도의 정치혁명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촛불혁명, 국민혁명은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넘어, 새누리당 해체, 적폐청산, 신보수연합분쇄, 분단반세기 누적적폐를 청산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가올 조기대선은 광장의 직접정치 요구를 담아내는 민주대개혁 정부를 구성하는가 못하는가를 결정하는 정치적 대결의 장이 될 것이다. 당면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을 견인하는 역할 역시 진보정치의 몫이다. 그러나 야권이 대신할 수 없는 광장의 직접정치, 노동자 농민 시민들의 근본적 지향을 실현하는 본질적 정치혁명은 결국 진보정치세력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보정치세력은 준비가 안되어 있다. 반면 국민혁명의 정치적 에너지를 진보주도의 정치혁명의 에너지로 모아내야 할 역사적 숙제는 크고도 엄중하다. 역시 리더십의 문제이다.

진보정치세력은 3가지 측면에서 진보정치의 흐름을 융합해내는 융합리더십을 구축해내야 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노농빈 대중조직의 리더십이다. 민중총궐기운동과 촛불혁명의 에너지를 진보정치의 에너지로 모아낼 수 있는 유일한 구심체는 현재로서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농빈 대중조직밖에 없다. 노농빈 주도 진보대통합정당건설이라는 구호 역시 노농빈이 주도한 민중총궐기, 진보적 시민이 함께한 촛불혁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이다.

다른 하나는 비록 갈라져 있지만 20여년의 진보정치의 경험을 축적한 진보정당들이 새로운 리더십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민중총궐기, 촛불혁명의 열기를 각자의 당원구조, 정당구조속으로 축적하려는 작은 목표를 버리고, 광범위한 진보적인 미조직 민중들이 함께할 수 있는 더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 진보정치에 대한 열망은 강력하나 진보정치의 분열로 인해 진보정치에 참가하지 못하는 노농빈 조직대중, 무수한 미조직 대중들이 진보정치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농빈 대중조직의 역할을 인정하고 통 크게 단결하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신흥진보정치 운동이다. ‘촛불당’이라는 상징어가 나타내듯 직접정치시대에 맞게 스스로 정당을 만들고 스스로의 정치운동을 전개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출현하고, 이러한 흐름들이 진보적 대안정당 건설운동으로 모아지도록 해야 한다.

정세와 촛불혁명 발전상의 요구로 보나, 대중들의 요구로 보나 너무나 명백한 진보적 대안정당, 진보대통합당건설이 출발점도 내딛지 못하는 주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무엇을 출발점으로 해야 그 실마리가 풀릴 것인가?

첫째는 불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역사를 통털어 진보정당운동의 성공은 민중의 거대한 투쟁속에서 이룩되었다. 영국 노동당이 차아티스트 운동의 전통위에서 전진하였고, 브라질 PT당 역시 민주변혁기의 총파업투쟁이라는 기반위에서 창당하고 집권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 대다수의 진보정치세력의 지도그룹은 최근 진행되는 민중총궐기투쟁, 촛불혁명속에서 진보정당의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 통합진보당 실험의 실패라는 앵글을 통해서만 진보정당의 미래를 보려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대안적 진보정당운동은 민중총궐기, 촛불혁명, 직접정치의 옥토위에서 자란다. 이 항쟁의 옥토위에 서서 보면 진보정당의 미래는 밝고 신념은 굳건해진다.

그러나 과거 진보정당운동의 분열과 패권, 실패의 폐허위에서 진보정당의 미래를 보게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과감히 던져서 대안적 진보정당운동의 미래를 개척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직 냉소와 불신만이 가득할 뿐이며, 실천가가 아니라 방관자, 평론가에 머무르게 된다. 대중은 항쟁의 옥토위에서 진보정당운동을 갈구하고 개척하고 있는데, 정치간부들은 실패의 폐허위에서 서 있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둘째는 지금 시점이 진보정당운동의 운명을 가르는 전략적 전환기라는 절박감이 부족하다.

진보정치세력이 지난 몇 년간의 연합정치에 대한 실패와 정파갈등이라는 측면에만 매몰되어, 한국정치가 대전환기에 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다.

진보정치세력이 지금처럼 각개약진할 경우, 정당으로 조직된 개별 정당세력들은 부분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전체 진보정당운동은 한국정치의 대전환기에 주도권을 상실하고 파편화되고 말 것이라는 점에 대해 전혀 심각하게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광장 직접정치의 힘으로 개척된 새로운 정치혁명의 공간이 합리적 개혁세력과 합리적 보수로 양분되고, 변형된 보수양당체제로 고착될 경우, 진보정치는 역사적 기회를 놓치고 미국이나 일본식 정치체제로 편입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너무 부족하다. 촛불혁명의 성과가 진보정치의 주도적 노력, 전략적 노력없이 진보정치의 발전으로 저절로 귀결될 것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진보정치세력은 촛불혁명, 대선-지방선거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기에 진보정치의 복원과 진보주도의 정치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진보대통합정당 건설, 공동 정치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장호 편집기획위원장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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