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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동의 신간서평]“구할 수 있었다!”<세월호, 그날의 기록>

저자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2015년 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와의 만남을 계기로 ‘세월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세월호 유족들이 건너야 할 슬픔과 절망의 시간이 바로 ‘진실의 힘’이 견뎌 온 시간과 같았기 때문이다. 작은 힘이나마 함께하고자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세월호 기록팀’을 구성했다.

1년 넘게 세월호 사건을 취재해 온 한겨레21 정은주 기자와 박다영씨, 박수빈 변호사, 박현진씨가 참여해 집필했다. 기록팀은 10개월 동안 15만 장에 가까운 기록과 3테라바이트(TB)가 넘는 자료를 자세히 분석했다. 산산조각 난 채 잡동사니에 파묻히고 뒤섞여 있는 진실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닦고 맞춰나갔다. 진실의 힘 조용환, 송소연, 강용주 이사와 이사랑 간사가 ‘세월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앞으로 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이규동 편집주간이 최근의 신간들 가운데 ‘돋보이는 책’을 선정해 격주로 집필한다.< 편집자 주>

 

저자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출판사 진실의 힘/정가 25,000원

그날, 세월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날, 올빼미족인 내가 그 시각에 눈을 뜬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를 일이다. 급하게 써 보내야할 원고가 있었거나 새벽까지 달린 음주로 목이 타서였을 텐데, 그건 아무래도 괜찮다. 버릇처럼 텔레비전을 켰다. 모로 고개를 떨구고 넋 나간 사람처럼 커다란 배 한 척이 한쪽으로 기울어 망망대해에 떠있는 모습이 화면 가득 잡혔다. 동시에 수학여행객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잠이 확 깼다. 고백하건대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기자 신분으로 현장을 누빌 때에도, 성수대교가 끊어져 출근길 시민들과 등굣길 아이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아까운 목숨을 잃을 때에도, 이 정도로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당시 우리 집 아이들이 고1, 침몰하는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이 마침 그 또래여서 더 그랬을 거다. 내가 왜 일어났는지도 잊은 채 화면 속에 빠져들었다.

세월호 사고기록에 의하면, 침몰이 시작된 시각은 8시49분. 선수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면서 배가 좌현으로 기울어졌다. 9시25분 해경 문자상황보고시스템에는 세월호가 좌현으로 20도 기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보는 화면에 잡힌 세월호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가슴 떨리는 사고지만 어쩌면 쉽게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 중계 카메라에 잡힐 정도로 사고 초기에 배를 발견했으니 구조만 서두른다면 큰 피해 없이 수습될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그런 내 바람처럼 11시쯤에는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떴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오보로 밝혀졌다.

이미 배는 침몰이 시작된 지 101분만인 10시30분 완전히 뒤집어져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헬기로 한 명씩 끌어올린 35명, 해경 123정이 태운 79명, 어업지도선과 어선이 구출한 58명이 구조자의 전부였다. 피해 가족들과 국민들은 304명을 품은 세월호가 수장되는 장면을 발만 동동 구르며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잔인한 하루였다. 그 이후에 벌어진 수습활동과 진실규명, 책임소재를 밝히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권과 책임자들의 태도가 이 사건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든 이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댈 거라고는, 그땐 아무도 몰랐다. 내 아이가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내 가족이 왜 죽어갔는지 알려달라며 항의표시로 진도와 안산을 걸어서 오가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진실의 힘

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날 희생된 단원고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다. 아버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참사와 관련된 기록을 모았다. 침몰하는 배를 지켜본 시민을 만나고, 국회에서 위증하는 공직자와 법정에서 발뺌하는 선원의 발언을 하나하나 받아 적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수만 장이나 되는 그 기록들을 읽었다. 그 기록 속에 ‘왜 구하지 않았는지’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오랜 시간 동안 진실의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이들이 있었다. 1970~80년대에 수사기관의 불법체포, 장기구금, 그리고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 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진실을 찾기 위해 기록을 모으고 증언자를 찾아 진술을 들었다. 진실을 호소하기 위해 길거리에도 나섰고, 한뎃잠 자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진실의 힘>이라는 이 단체와 까닭모른 채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여러 모로 닮았다. 달걀로 바위를 쳐본 사람만이 아는 공감대다.

<진실의 힘>은 새롭게 세월호 진실 찾기에 나섰다. ‘세월호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하고 ‘세월호 기록팀’을 구성했다. 참사가 벌어진 지 1년쯤 되던 지난 2015년 봄 일이다. 활동 10개월 동안 15만 장의 기록, 3테라바이트가 넘는 자료들을 분석했다. 독자적인 조사는 시도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기록과 자료를 분석했다. 그것이 비록 완전한 진실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참가 2주기를 앞둔 지난 3월, 마침내 697쪽의 묵직한 기록물을 세상에 내놨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저자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출판사 진실의 힘/ 정가 25,000원)이 그것이다.

“구할 수 있었다!”

이 기록물에는 배가 인천항을 뜨기 전부터 완전히 침몰한 10시30분까지 상황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담겨있다. 뉴스를 통해 지금껏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사실들을 깁고 맞추고 이어서 사건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장감 있게 구성해냈다. 참사가 진행된 101분 동안 배 안에서 벌어진 일, 구조하러온 해경과 관제실, 상황실, 청와대의 대응까지 이제껏 밝혀진 바를 고스란히 복원했다. 자초지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언뜻 잘 쓴 비극소설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묵직한 책 안에 기록팀의 감정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한마디의 대화에도 짧은 순간 일어난 상황에도 모두 각주가 달려있다. 근거에 의한 기록이란 말이다. 이렇게 해서 달린 각주만 해도 2001개.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먹먹하지는 않았으리라.

2014년 4월16일 오전,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 선장과 선원은 무엇을 했는지, 해경과 지휘부는 무엇을 했는지, 선장과 선원들을 도주시킨 해경이 배에 갇혀있는 승객들은 왜 못 구했는지 추적했습니다. 승객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존자들은 어떻게 살았고 희생자들은 왜 희생되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배는 왜 침몰했는지, 우연한 사고였는지, 사고가 날 때까지 세월호와 청해진해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 글이 책머리에 있어 옮겼다. 기록팀은 시민의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려고 노력했고 객관적인 자세로 검토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구할 수 있었다!”고.

‘작은 기적’

더불어 기울어져가는 배 안에서 일어났던 ‘작은 기적’을 소개하면서 이 책을 쓰는 동안 품었던 다짐을 내비치기도 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 다섯 살 권ㅇㅇ양은 세월호 4층 키즈룸에서 오빠와 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수라장이 된 배 안에서 부모와 떨어져 울고 있는 ‘애기’를 본 단원고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안아서 달래주었습니다. 점점 기울어지는 배 안에서 자기들도 무서워 울면서 권양을 보듬었습니다.

“울지 마, 괜찮아.”

애기를 안고 애타할 부모를 찾아주려고 소리도 질렀습니다.

“애기 여깄어요.”

10시19분, 뒤집어지는 세월호 우현 난간에 승객 10여 명이 솟구쳐 나왔습니다. 한 남학생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애기요, 애기!”

배 안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학생들과 승객들이 손을 모아 난간 밖으로 애기를 밀어 올려 보낸 것입니다. 권양은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10년 후, 별이 된 아이들만큼 자란 권양이 이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록팀은 권양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한 책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진도 팽목항에서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진실을 내팽개치고 달아난 사람들도 있고, 진실을 정쟁이나 시빗거리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거짓은 결코 진실을 이길 수 없다. 다만 때를 기다릴 뿐이다. 바다 속 깊은 곳에서.

▲ 이규동 '유레카' 편집주간

편집국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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