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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에 바치는 시새로운 바다에 새로운 배를 띄우자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후, 충격에 휩싸인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네 번에 걸쳐 든 촛불을 통해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묵묵부답인 대통령의 후안무치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했고 더욱 전위를 다져 내일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국민의 권력’을 보여줄 것이다. 한국작가회의 박일환시인은 이러한 국민들의 다짐과 열망을 담은 시를 <현장언론 민플러스>에 보내왔다. 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새로운 바다에 새로운 배를 띄우자

박일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지금은 뱃머리를 산으로 돌릴 때다.

이참에 우리 모두 사공이 되자.

사공이 되어 배를 끌고, 메고, 산으로 가자.

 

그날 이후 우리에게 선장은 없었다.

아이들을 차가운 바닷속으로 밀어 넣은 살인자만 있을 뿐

세월호에도 대한민국호에도 선장은 없었다.

 

요염하고 가증스러운 세이렌의 목소리에 홀린 선장이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거침없이 배를 몰고 가는 동안

우리 역시 눈멀고 귀 먹어 있었으니

그 동안의 죄를 뉘우치며, 눈물로 고백하며, 촛불을 들자.

 

각자의 선실에서 뛰쳐나와 소리치자.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무자격 선장을 끌어내라!

목을 베어서라도 당장 끌어내라!

이제부터 우리가 직접 삿대를 잡겠다!

 

덕지덕지 냄새나는 분이나 처바르고 꼭두각시 춤이나 추는

헛것들의 미친 놀음판을 걷어차 버려라!

아귀처럼 먹어치워 불룩해진 탐욕의 뱃구레를 뚫어 버려라!

미끌미끌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위선의 창자를 끊어 버려라!

거머리 같고 흡혈귀 같은 것들 모두 쓸어 버려라!

 

배가 산으로 가면 안 된다는 거짓 언어에 속지 마라.

익숙한 길로 가라는 건 익숙하게 속으라는 것

그러니 산으로 가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기울어진 뱃전을 들어 올리고, 어기영차!

너와 내가 사공이 되어 배를 끌고 산으로 가자.

 

산 위에 올라 다함께 눈을 들어 멀리 보자.

어느 바다로 배를 띄우면 좋을지 머리를 맞대보자.

더 크고 단단한 배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보자.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망치를 들고, 붓을 들고, 곡괭이를 들고, 카메라를 들어라.

너는 뱃머리를 맡고, 너는 뱃전을 맡고, 너는 돛을 맡아라.

너는 기울기를 재고, 너는 바람 부는 방향을 살피고, 너는 기관을 정비해라.

 

저 너울대는 촛불 바다에서

새로운 물결이 일고, 파도와 파도가 어깨동무하고 있다.

뜨거운 숨결들이 마침내 새로 만든 배를 띄워줄 것이다.

두려움 없이 올라타자, 아직 가보지 못한 바다로

우리가 사공이 되어 벅차게 나아가 보자.

 

꿈꾸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상상의 바다와 상상의 나라는 여기서 멀지 않다.

차마 죽어서도 죽지 못한 304명의 원혼이 등대 불을 밝혀줄 것이다.

 

이제 산등성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배를 풀어라.

푸른 기와지붕을 뱃머리로 우지끈 치받고 가자!

죽음의 바다를 건너 해원(解冤)의 바다로 가자!

 

자유도 좋고 평등도 좋고, 연애도 좋고 막걸리판 육자배기도 좋다.

가로세로 삐뚤빼뚤, 한 획이 모자란들 어떻고 한 획이 넘친들 어떠랴.

저마다 자신의 꿈을 눌러 새긴 깃발을 뱃전마다 매달고 가자!

 

반란이라 불러도 좋고, 혁명이라 불러도 좋다.

먼 옛날 외눈박이 선장이 있었다고,

그 밑에서 억눌렸던 목소리, 목소리들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고,

그날의 빛살 기둥이 참으로 장엄했노라고,

떠올릴 때마다 저절로 눈시울 뜨거워지는 벅찬 감동이

미래의 가슴 속에 또렷이 새겨지도록 하자.

 

너로 하여금 내가 나이게 하자.

나로 하여금 네가 너이도록 하자.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무늬로 이 세상을 수놓을 때까지

 

우리 모두 사공이 되어

힘껏 당겨라, 저어라, 밀어라!

어화넘차, 춤추며 가자! 가자! 가자! 

 

 

박일환 시인 1997년에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했으며, 시집 『푸른 삼각뿔』, 『끊어진 현』, 『지는 싸움』 등을 냈다. <한국작가회의>, <리얼리스트100>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일환시인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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