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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대중음악의 레전드, 작곡가 리종오북한, 예술로 읽다(13)

북측의 퍼스트레이디인 리설주가 현역 시절 부른 곡이 <아직은 말못해>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애창했던 대중가요는 <휘파람>이다. <반갑습니다>, <녀성은 꽃이라네> 등과 함께 남측에도 널리 알려진 이 북한 가요들의 작곡가인 리종오가 지난 11월 8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해 향년 73세로 세상을 달리했다.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본보기 예술집단인 보천보전자악단과 모란봉악단의 주요 레퍼토리를 창작해 온 리종오는, 세대를 이어 대중성과 예술성으로 북한 인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또한 북측 음악계의 ‘시대적 요구와 인민들의 감성에 좋은 노래들의 수요’가 붐처럼 일 때 ‘우리식 전자음악’의 시작과 발전을 함께 일구어 낸 북한 최고의 작곡가 중의 한 명이다.

▲ 작곡가 리종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사상예술성이 높은 송가들과 대중가요, 경음악 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하여 주체음악예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고 천만 군민의 혁명열, 투쟁열을 북돋아 주는 데 이바지하였다"고 리종오를 추모했다.

리종오는 1943년 11월 7일 평안북도 구성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시기인 1952년 9월 소학교에 입학해서, 1960년 평양음악대학(현 김원균명칭평양음악대학)을 졸업했다. 동교에서 교원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9년부터 조선인민군협주단과 만수대예술단에서 작곡가로 활동했다. 1980년대 말 김정일 위원장이 창단한 보천보전자악단의 작곡가 겸 지휘자이자 단장까지 역임하며 다수의 인기 대중가요를 만들어 북측의 ‘히트곡 제조기’로 명성을 얻었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그가 작사 작곡해 보천보전자악단의 리경숙이 노래한 <반갑습니다>가 널리 사랑을 받으면서 남측에도 알려지게 됐다. 2001년 4월 평양에서 열린 김연자 콘서트에서 오프닝 곡으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통일노래로 사랑을 받고 있다. <반갑습니다>는 1991년 9월 조일 수교회담을 기념한 보천보전자악단의 일본 5대도시 순회공연 중 공연장의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고 동포들과 쉽게 다가갈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의 결과로 탄생한 곡이다. 리종오는 다수의 인기곡을 작곡한 공로로 1989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1991년 김일성상을 받았으며 1992년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1994년에는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

북측에서 노래는 지도자를 우러르는 ‘송가’ 와 사상성이나 혁명성을 강조하는 ‘혁명가요’ 등의 정치색이 강한 노래와 비정치적인 ‘계몽기 가요’와 ‘민요’, 일상의 소소한 삶에서 주제나 소재를 가져온 ‘생활 가요’ 혹은 ‘서정가요’로 구분된다. 여전히 정치색이 강한 당 정책가요들에 명곡이 많고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생활가요도 많이 보급이 되고 있다. 리종오의 곡이 사랑을 받은 것은, 과거의 노래가 무겁고 장중한데 반해 밝고 경쾌하며, 기존의 사상적 교양과 선동의 가사에 비해 간결하고도 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리종오는 바로 ‘생활가요’ 부문에서 북측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사랑의 미소>, <친근한 이름>, <녀성은 꽃이라네>, <아직은 말못해>, <축복하노라> 등의 히트곡이 있다. 이 외에도 리경숙이 노래한 <도시처녀 시집와요>는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가 됐고, <축배를 들자>는 결혼식장에서 널리 불리고 있다.

그렇지만 생활가요 부분에서 그의 대표작은 역시 <휘파람>이다. 김정일 위원장도 “노래가 좋기 때문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이틀이 되기 전에 다 배워 불렀다”고 평할 만큼 <휘파람>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인기 여가수인 전혜영이 불러 더욱 인기가 많았던 <휘파람>은, 남측에서도 노래방은 물론 컬러링 서비스까지 됐고, 통일교육 교재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휘파람>이 유명하게 된 배경에는 작사가인 조기천의 영향도 분명해 보인다. 수령형상음악의 최고인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함께 수령형상문학의 기원으로 공인되고 있는 북측 최초의 장편 서사시 <백두산>의 저자가 바로 시인 조기천이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김일성 주석의 보천보 전투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제1회 북조선예술축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북한 문학예술의 모범적인 전형으로 칭해지고 있다. <휘파람>은 1947년 조 시인이 창작한 서정시를 1990년에 가사화하여 리종오가 곡을 붙였다.

조기천은 1913년 소련 블라디보스토크 연해주 ‘스파스크 촌’에서 출생, 1930년 우스리스크 시 조선사범전문학교 출신으로, 1938년 7월에 시베리아 옴스크고리끼 사범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그해 9월 카자흐스탄 크슬오르다 시 소재 조선사범대학 문학부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39년 8월 모스크바 종합대학 대학원에 파견됐으나, 간첩 혐의로 추방이 되기도 했다. 그 후 고려인 신문 <레닌기치>(후에 <고려일보>로 개칭)에서 문화부장으로 일했다.

▲ '휘파람' 가수 전혜영

조기천은 1945년 8월 29일 소련군과 함께 입국해, 전동혁, 림하 등과 함께 소련군 기관지 <조선신문>을 만들어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부터 문예총 작가동맹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1946년 서정시 <두만강>, 광복의 감격을 노래한 <을밀대에서 부른 노래>, 토지개혁을 그린 <땅의 노래>를, 1947년 장편 서사시 <백두산>, 서정시 <우리의 노래>를, 1949년 여순사건을 다룬 <항쟁의 려수>를, 1950년 흥남공장 노동자들의 생활과 체험을 담은 장편 서사시 <생의 노래>를 발표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도 활동한 조 시인은 1951년 3월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에 올랐으나, 이해 7월 31일 39세의 이른 나이로 평양 폭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명시인으로 남은 조기천은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묻혔다.

<휘파람>의 큰 성공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한때 이 곡은 북측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1992년 6월 4일 내외통신 기사를 받아 작성한 6월6일자 조선일보의 기사에서 “이 노래가 혁명성이 없어 민심을 동요시키고 사상 해이를 초래하여 인민들을 바보로 만들 뿐만 아니라 조직의 기강과 규율을 깨고 있다”는 이유로 북에서 금지곡이 됐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오보였다.

1990년 6월21일 보천보전자악단 공연 후 간담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방송에서 혁명가요는 내보내지 않고 예를 들어 <휘파람>만 나온다는 지적에 놀란 관계기관의 일군들의 과잉 충성으로 한때 방송 편성에서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김 위원장이 “나는 혁명가요도 부르고 <휘파람> 같은 노래도 부르라고 하였지, <휘파람> 같은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말해 시정 조치가 된 바 있다.

북측의 <문학예술사전>에서는, 가요 <휘파람>은 ‘우리 당의 품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나는 로동청년들의 애정세계를 노래한 생활적이며 대중적인 통속가요’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가사에서는 조국건설을 위한 생산경쟁에서 혁신자의 영예를 안고 사랑을 더욱 꽃피우려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고상한 사상감정과 그 생활을 생동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리종오가 다시금 화제가 된 것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바치는 첫 송가로 알려진 <발걸음> 때문이다. 리종오가 작사 작곡한 <발걸음>은 '척척 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으로 시작하는 노래로, 2009년 2월 조선중앙방송 등을 통해 첫 공개된 후, <김일성장군의 노래>, <김정일장군의 노래>의 뒤를 이어 김정은 시대를 알리는 노래로 알려졌다. 최근인 2016년 9월22일 리용호 외무상의 방미에 맞춰, 뉴욕의 머킨콘서트홀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크리스토퍼 리의 지휘와 재미교향악단인 우륵심포니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가 되기도 했다.

<휘파람>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리종오를 북측 작곡계에 우뚝 세운 곡은 1992년에 창작한 <내 나라 제일로 좋아>이다. ‘혁명적 대작’이라 일컬어지는 다부작(시리즈) 영화 <민족과 운명>의 ‘종자’가 되기도 했던 이 노래는 실제 해당 영화의 주제곡으로도 사용이 됐다. 1995년 5월1일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는 특별 열차 안에서 불러 유명해진 곡이기도 하다. 2014년에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란 제목으로 리종오의 작품집이 출판이 되기도 했다.

▲ '말못해'를 부르는 리설주

김정일 위원장은 “음악은 정치에 봉사해야하며, 정치가 없는 음악은 향기가 없는 꽃과 같고 음악이 없는 정치는 심장이 없는 정치와 같다”라며 음악과 정치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북한의 독특한 통치수단인 ‘음악정치’를 도입했고, 김정은 위원장 역시 그것을 계승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체제 안정기에 들어선 2015년에 개최한 예술공연 <추억의노래>와 조선로동당 창건 70돐 경축 1만 명 대공연 <위대한 당, 찬란한 조선>인데, 여기에는 국보급 예술단체인 만수대예술단 녀성기악중주단,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예술단 등의 명배우와 연주가들이 이제는 백발의 노장이 되어 총출연했다.

리종오는 <추억의 노래> 공연에 출연해 “제가 보천보전자악단에 있을 때 창작한 노래들을 지휘해 보겠습니다” 라며 직접 플롯 독주로 “뻐꾹새”를 잠시 실연한 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연주가 쉽지 않다며 특유의 여유와 기풍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1만 명 대공연 <위대한 당, 찬란한 조선>이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세대와 세대 간의 사상과 신념으로 융화될 수 있는 ‘음악 정치’의 최선봉에서 140여 편의 가요들을 창작하며 김일성상 계관인이자, 로력영웅이며 인민예술가로 살아온 리종오는 그렇게 인민들 속에 전설로 남았다.

“이국의 들가에 피여 난 꽃도/ 내 나라 꽃보다 곱지 못했소 /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 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중에서

 

* 보천보전자악단 연주, 노래 리경숙(지휘 리종오) “반갑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HbrIqs6u88

* 전혜영독창회 “휘파람”

https://www.youtube.com/watch?v=GGFY9r7AtC8

* 은하수관현악단 연주, 노래 리설주 “아직은 말못해”

https://www.youtube.com/watch?v=bMlZsqMaoxw&list=RDbMlZsqMaoxw

* 모란봉악단 연주, 경음악 “내 나라 제일로 좋아”

https://www.youtube.com/watch?v=z-bnpQLwDsE

이철주 편집기획위원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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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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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11-23 18:09:27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북한노래로는 가수 전혜영(현재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음악강사)이 부른 휘파람과 가수 리경숙(현재는 부양)이 부른 반갑습니다가 제일 기억이 남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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