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지난연재 조연희 시의 사생활
개 같은 가을, 매독 같은 가을이라니…[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15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전기대 낙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그렇게 소원하던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전지 가득 빽빽하게 합격자의 수험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멀리서도 나는 내 이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이름 주변에서 이상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그렇게 크게 빛나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이내 실망감으로 바뀐다.

큰 소가 굴레를 벗어놓은 곳

학교는 ‘굴레방다리’에서도 북아현동 방향으로 한참이나 더 들어간 곳에 있었다. ‘굴레방다리’라는 지명은 ‘큰 소가 길마는 무악에, 굴레는 이곳에 벗어 놓고, 서강을 향하여 내려가다가 와우산에 가서 누웠다’는 풍수지리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가 굴레를 벗어놓은 곳이라서 그럴까. 대학가라기보다는 소가 벗어놓은 굴레를 뒤집어 쓴 듯한 사람들이 더 많이 왕래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현시장과 공덕시장 등 재래시장이 자리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껍질이 말라가는 귤이나 가지, 오이 등을 쌓아놓은 채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나 빗자루, 수세미 등 생활 잡화들을 가득 실은 리어카들이 즐비한 곳. 심지어 아현고가도로 밑에는 밤에만 불을 밝히는 개미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일명 방석집이라고도 하는데 밤이면 유리문 안쪽에 한두 명의 여자들이 푸줏간 고기처럼 붉은 살을 드러낸 채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교에 가려면 굴레방다리에서 버스를 갈아타거나 마을버스를 타야 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우리는 2킬로는 족히 될 그 길을 걸어가곤 했다. 2차선 도로를 끼고 단층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굴다리에 닿았다. 굴다리는 이상한 세계로 통하는 진입로 같았다. 굴다리 입구에 금은방을 겸한 조그만 시계방이 있었는데 벽 면 가득 빽빽하게 전시된 시계들은 모두 제 각각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흔들리는 시계추를 보노라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이상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굴다리 앞에서 박제된 듯 죽은 고양이 시신을 보기도 했다. 굴다리 벽면은 늘 간밤의 토사물과 오줌 지린 자국으로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파출부 하실 분, 쓰실 분, 수술 없이 낙태, 무모증, 발기부전증 등의 문구가 박힌 스티커들을 보며 나는 실망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 청춘이 이렇게 남루하고 초라한 곳에서 시작되는구나, 굴다리쯤에서 자꾸 휘청이는 걸음을 어쩌지 못했다.

허름한 뒷골목 시계방에는

살바도르 달리의 휘어진 시간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아침 10시부터 백발이 성성한 주인은

확대경으로 일그러진 시간을 들여다본다

멈춘 시침과 분침 사이에 웅덩이가 있다.

기억은 말단비대증 환자여서

육 개월 전에 주문해 놓은 자장면에서

시간의 날파리들이 날아다니고

3년 전에 죽은 시동생이 군화 끈을 매고 있다.

눈치 없는 개나리는 몇 시야, 아무 때나 꽃술을 열고

텅 빈 괘종시계에선

뻐꾸기 대신 증조할아버지가

아가야. 아가야… 자꾸 모가지를 내민다.

할아버지 전 도플갱어인걸요.

살비듬 같은 햇빛이 날리는 거리

한 때 내 머리카락이며 손톱이었던 것들이

둔갑을 서두르며 문지방을 넘어가는

이상한 너무도 이상한,

- 졸시 ‘이상한 나리의 엘리스’ 전문

▲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1931/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밤마다 부풀어 오르는 교정

굴다리를 통과하면서 분위기는 조금 나아졌다. 교문 입구에 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칸딘스키의 미술이론이나 문학잡지들이 서점 밖까지 쌓여 있는 모습이 그나마 조금 학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교문을 들어서면 텔레토비의 동산 같은 완만한 둔덕이 펼쳐지며 산소나 오존 농도가 훨씬 짙어진 듯한 파란 공기가 코끝을 스쳐 갔다. 어디선가 살며시 다가온 대금 소리와 해금 소리가 가만가만 내 피부를 어루만졌다. 비로소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몰랐으리라. 밤마다 그 작은 교정이 부풀어 오른다는 것을. 철쭉이나 쥐똥나무가 소철이나 자귀나무처럼 키가 갑자기 자랐다. 3급수에서도 산다는 붕어조차 한 마리 없던 연못에는 팔뚝만 한 잉어와 자라가 헤엄을 쳤다. 새내기인 우리들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한 번쯤 이 연못에서 익사 직전까지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날이 조금 흐렸던가. 공강이 있던 그 날, 나는 둔덕에 누워 부드러운 봄바람을 홑이불인 양 덮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성악과에서 나오는 발성연습소리가 한 가닥 또는 두 세 가닥으로 엮어져 교정 위를 흘러 다녔다. 피아노 건반 소리가 포말처럼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내 갈비뼈 근처까지 밀려왔다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이따금 바람이 장난스럽게 나뭇잎을 찰랑찰랑 흔들며 지나갔다.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불협화음처럼 튀어 올랐다. “야, 개 같은 가을이래. 매독 같은 가을이래.”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던 모양인데 대화 내용으로 보아 같은 학과인 듯 했다. 이 화창한 봄에 개 같은 가을이라니… 매독 같은 가을이라니….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최승자의 '개 같은 가을‘ 이라는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생략)

- ‘개 같은 가을이’/ 최승자

현역이었던 나는 교과서에 실린 시 이외에는 현대시를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재수나 삼수를 거친 동기들은 문학 활동이나 동인 모임을 통해 활동을 꽤 많이 한 모양이었다. 동안인데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유난히 오동통한 볼을 갖고 있었던 나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무시당할까 봐 겁났다. 최대한 나이 들어 보이길, 경험 많은 여자처럼 보이길 희망했다. 가능한 한 퇴폐적으로, 일부러 미간 사이에 ‘내 천(川)’자를 그리며 눈에 힘을 주고 다녔다. 그 모습조차 우스웠겠지만. 내가 릴케를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눈이 퀭한 김수영의 시집을 보여주었고 데미안을 이야기하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나 ‘오정희’의 「동경」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소설창작 시간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K교수가 그날따라 수업할 생각은 않고 갑자기 걸리버 여행기가 모두 몇 부로 되어 있느냐고 질문했다.

“자네는 걸리버 여행기가 모두 몇 부로 돼 있다고 생각하나?”

“2부요.”

“걸리버 여행기가 2부라고? 자네는?”

“소인국, 대인국.”

“자네는?”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던지던 K교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우리 중에 정답자가 없었는지 이윽고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또 걸리버 여행기가 모두 몇 부인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K교수의 노여움을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읽은 『걸리버 여행기』는 아마도 동화책으로 번역된 거인국과 소인국 정도의 축약본이었던 것 같다. 원작은 '소인국'과 '거인국' 외에 '하늘을 나는 섬나라', '말의 나라' 등이 포함된 총 4부작 성인용 소설로 18세기 영국의 정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대작’이라는 것이었다.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이다. 스위프트는 인간을 4가지 다른 관점에서 묘사하기 위해 우화적인 수법을 사용하였다. 즉, 1부의 릴리프트인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인간의 모습이고, 2부의 브로딩낵 사람들은 세밀하게 들여다 본 인간의 모습이며, 3부의 라푸타 섬의 주민들은 이성주의를 맹신하는 인간의 모습, 4부의 야후는 동물적인 면이 강조된 인간의 원초적 모습인 것이다.’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4』중 <풍자문학의 꽃>편 / 김일영 / 휴머니스트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었을까. 정말 겁 없이 글을 쓰겠다고 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인생에서 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은 ‘사랑과 글쓰기’ 두 가지 뿐이라고. 그런데 딱히 그 말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인생을 알고 싶어서 글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에서 죄가 무엇이고 벌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조나단 스위프트가 인간과 사회라는 것은 무엇인가 의문을 제기한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질문을 하는 것이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인생은 부조리한지. 그러나 갑자기 글을 쓰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교정에 가득 핀 개나리가 노란 눈망울을 글썽이며 물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진달래가 기습 키스 당한 여인의 립스틱처럼 붉게 뭉개진 채 물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나는 문득 굴레방다리에서 큰 소가 벗어놓았다는 그 굴레가 생각났다. 어쩌면 나는 그 ‘굴레’를 뒤집어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고. 문학이란 그 굴레를 말이다….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야매미장원에서'가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조연희 작가  news@minplus.or.kr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연희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