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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오적> 필화사건 4채형복 교수의 ‘한국문학의 필화사건’
'시 분야' 첫 필화사건 <오적>의 작가 김지하의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 저항한 대표적 시인으로 1941년 2월 4일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원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와 중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뒤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1969년 시 ‘황톳길’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오적필화사건 및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옥고를 겪었다. 

4. 문학으로 법 읽기, 법으로 문학 읽기 2

‘오적’을 패러디라고 볼 때 법률적으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바로 ‘패러디’와 ‘표절’의 관계다. 최근(2015년)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논란으로 한동안 문단을 뜨겁게 달궜다. 신경숙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그의 표절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 재판정에서의 김지하

‘표절’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에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쓰는 것’이다. ‘몰래 따다 쓴다’는 것은 어느 작가가 원작자나 원작품의 밝히지 않고 그 작품의 일부나 전체를 똑같이 베껴 쓴다는 의미다. 패러디가 새로운 창작물이라면, 표절은 복사품 혹은 복제품이다. 전자는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으나 후자는 그에 저촉돼 형사상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다만, 어느 행위든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으면 형사처벌의 유무를 떠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결국 법적인 판단에서 보면, 패러디와 표절의 차이는 원작품에 대한 모방인가 아니면 창작품인가에 달려 있다.

신경숙의 표절 논란과 관련하여 김지하가 쓴 ‘타는 목마름으로’ 역시 표절작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평론가 황현산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프랑스의 유명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표절한 것”이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이어서 그는 말하기를 “사람들은 그게 (폴) 엘뤼아르의 표절인 걸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민주화의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잘한 일이었는지 묻게 된다”는 소회를 밝혔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을 때 ‘타는 목마름으로’는 작곡가 이성형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져 민중들에게 널리 불렸다. “민주화의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시가 표절인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다. 이렇게 보면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지하의 표절을 눈감은 ‘공범’인 셈이다.

하지만 ‘민주화의 대의’라는 시대적 정치상황에 의해 표절임에도 면책된 ‘타는 목마름으로’와 달리 담시 ‘오적’은 패러디로서 하나의 문학형태다. 김지하는 이 시에서 담시의 장르를 채용하여 판소리가 가지는 풍자를 통해 민중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소수특권지배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의도하는 바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는 것이다. 그 ‘별별 이상한 도둑’이 바로 ‘오적’이고, ‘이야기 시-담시’는 곧 ‘다섯 도둑 이야기’가 된다.

‘오적’이란 시의 제목이 뜻하는 ‘다섯 도둑’이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그러나 이 시에는 이 ‘다섯 도둑’ 외에 ‘포도대장’과 ‘꾀수’란 다른 두 명의 도둑이 더 등장한다. 고현철은 이 ‘일곱 명’의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기”의 내용을 이렇게 정리한다.

1) 옛날 서울 장안 어느 곳에 잘 먹고 잘사는 타락한 다섯 도적(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 모여 살았다.

2) 오적들이 도둑시합을 질탕하게 벌인다.

3) 어명이 떨어져서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을 잡아들이라고 하여 포도대장이 나서는데, 좀도둑 꾀수가 잡혀 무자비하게 고문을 당한다.

4) 포도대장이 꾀수를 회유하여 오적이 있는 곳을 알아 오적을 잡으러 간다.

5) 휘황찬란한 오적들의 잔치에 포도대장 기죽는다.

6) 포도대장, 오적들의 호위병 역할하고, 별 죄 없는 꾀수만 잡아 감옥에 보낸다.

7) 포도대장과 오적들, 어느 날 갑자기 벼락 맞아 죽는다.

김지하는 당대 대표적인 지배집단인 ‘오적’과 피지배집단인 ‘꾀수’를 내세워 상호대립적인 관계를 풍자한다. 꾀수는 날치기, 팸프, 껌팔이, 거지 등의 지배집단인 오적에 의해 핍박받고 억압받는 피지배집단인 민중을 표상한다. 꾀수와 오적은 ‘가난함/부유함’, ‘선/악, 지배계층/피지배계층’ 등으로 대립되고 이로 인하여 갈등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 양대 집단의 중간계층으로 ‘포도대장’을 내세운다. 하지만 ‘포도대장’은 피지배집단인 ‘민중의 지팡이’나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다. 지배집단인 ‘오적’에게 한없이 비굴하고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에 젖어 있는 비굴하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다. 박애리는 이 세 가지 유형의 계층을 구분하는 ‘변별적 자질들’을 이렇게 구분한다.

오적 : 부유함, 물질적, 사치, 가렴주구, 이기주의, 잔인, 거만, 불신, 화려, 고급, 권력, 힘, 몰인정, 낭비, 초월적, 괴팍, 겉치레, 방종, 우월함

포도대장 : 육체적인 힘, 남자다움, 운동성, 거만, 잔인, 경멸, 무례, 천박, 기회주의, 야비, 도발적, 세속적, 난폭, 무식, 출세욕, 적극적

꾀수 : 가난함, 소극적, 육체적 약함, 진실, 초라함, 지저분함, 낮음, 수동적, 불안정, 하층민, 비천함, 소박함, 유약함, 생명부재, 더러움

김지하는 지배계층인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의 오적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면서도 오히려 꾀수를 내세워 줏대 없고 윗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끊임없이 신분상승을 꿈꾸는 ‘포도대장’의 비틀린 권위와 허위의식을 고발한다. 본래 꾀수는 농사로는 먹고 살지 못해 돈벌이하러 서울에 올라온 갯땅쇠로 도시빈민이자 빈곤층이다. 그의 ‘죄 아닌 죄’는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 먹은 그 죄”밖에 없다. 그런 불쌍한 민중을 포도대장은 지배집단이 구축한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 법과 권위를 빌어 핍박한다.

하지만 담시 ‘오적’에서는 최고 권력자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오적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며 ‘한 왕초’가 곧 최고 권력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봐라/게 아무도 없느냐/나라 망신시키는 五賊을 잡아들여라/추상같은 어명이 쾅”이라는 대목의 ‘추상같은 어명’도 왕이 내리는 명령이므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포도대장은 꾀수에게 “이리 바짝 저리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 태워 공중잡이/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으며 온갖 고문을 한다. 마치 군사정권 시절 당시 안기부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행하던 물고문․불고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고문은 국가공권력이 개인에게 가하는 가장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이다. 군사정권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 김근태가 쓴 수기 <남영동>(중원문화, 2012)에서 그는 남영동을 “‘인간도살장’, ‘독가스 대신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설치는 나치 수용소’였으며, ‘시간이 종국적으로 멈춰버린 저주의 세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김동춘은 “‘인간도살장’의 세 가지 논리”라는 글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고문은 “(국가공권력에 대드는) 개인이나 세력을 향한 복수이고 화풀이”라고 규정한다. 국가공권력의 명령을 수행하는 ‘충직한 사냥개’로서 포도대장은 고문을 이용하여 꾀수에게 온갖 폭력과 위협을 가한다. 하지만 꾀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아니랑께롱/한마디뿐”이다.

포도대장에게 협조하지 아니하고 오적의 온갖 부정과 비리를 폭로한 죄로 꾀수는 결국 ‘가막소’로 들어간다. 오적은 포도대장의 그 공로를 인정하고, 포도대장으로 하여금 저희가 사는 솟을대문 곁에 있는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 한다. 이 말은 들은 포도대장은, “이말듣고 얼시구 좋아라/지화자좋네”라며 춤을 추며 좋아하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하다.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한다. 그와 함께 “五賊도 六孔(육공)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진다.

이처럼 ‘오적’의 결론은 너무 성급하고, “착한 자는 복 받고, 악한 자는 벌 받는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적과 포도대장, 그리고 꾀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의 의미는 적지 않다. 김지하는 ‘김지하담시모음집’ <오적>(동광출판사, 1985.9.30)의 머리말에서 “산이 있으니까 산에 간다”며 이렇게 말한다.

"五賊이 있으니까 五賊을 썼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때 그 무렵 내 심경이 이러구 저러구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만 이야기하자. 五賊이 있으니까 五賊을 썼겠지 그것뿐이다.”

그의 말은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지금 여기(Now & Here)’와 그 뜻이 통한다. 그의 말대로 시문학이 존재하고 말해야 하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시인은 ‘지금 여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금 여기’서 이 글을 쓰는데 새삼 궁금한 대목이 있다. 지금 ‘시인’ 김지하는 어디에 목숨 걸고 있을까?

(이번을 마지막으로 김지하의 '오적'필화사건을 마칩니다. 다음에는 양성우 <노예수첩> 필화사건이 연재됩니다.)

 

채형복 교수는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3대학에서 ‘유럽공동체법’을 전공했다. 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시인이기도 하다.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저승꽃>, <우리는 늘 혼자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채형복교수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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