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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곡소리 끊긴 상가집처럼…[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13

링거주사를 머리에 꼽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아가의 모습만큼 슬픈 것이 있을까. 어린 아가일수록 혈관이 잘 나오지 않아 머리에 주삿바늘을 꼽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가도 위험한 고비를 넘긴 뒤 머리에 링거바늘을 꼽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아가와 헤어질 시간은 기어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퇴원하자마자 아가의 해외입양이 정해진 것이다. 

입양

홀트아동복지회에서는 양부모가 확정되자 위탁모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가의 양부모는 옆구리가 흘러넘치는 햄버거 같은 고도비만의 노란 머리였는데, 웃는 얼굴이 그리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자신의 아이인 듯 한 사내애가 염소에게 당근을 주는 모습, 마당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습 등의 사진도 함께 있었다. 무허가 판자촌에 살고 있는 우리 눈에는 푸른 잔디 위의 하얀 집은 꽤 여유로워 보였다. 노심초사하던 엄마도 사진을 보고는 조금 안심하는 눈치였다. 

위탁모를 하다보면 간혹 아이의 커가는 모습의 사진들과 함께 편지를 보내오는 양부모도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외국어 편지를 나에게 읽어달라고 했는데 필기체로 갈겨쓴 암호를 어찌 다 해독할 것인가.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읽는 척하다가 잘 지내고 있대… 엄마에게 고맙대… 라고 일축하곤 했다. 그러면 잠시 엄마 이마의 주름이 부드럽게 풀어지기도 했다.

위탁모 10년차쯤 됐을까. 엄마가 양부모의 초청을 받아 미국과 독일까지 다녀오는 일도 생겼다. 당시 엄마는 남대문 시장에서 색동한복을 입은 인형과 복조리개 등을 샀다. 입양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었다. 그런데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 생모도 아닌 위탁모는 얼마나 낯설고 어색한 존재였을까. 위탁모가 내미는 조금은 조악한 선물들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피 한 방울의 끌림도 없고 말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잠시 길러준 엄마’ 가 그들에겐 자신을 버린 초라한 조국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또 거꾸로 양부모들이 간혹 입양아를 대동하고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입양한 아기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가족을 잔뜩 긴장시키기도 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엄마가 있는 것 같다. 생모, 위탁모. 양모. 그중에서 위탁모는 죄를 가장 많이 지은 사람에게 맡겨지는 악역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두 번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생이별을 견뎌야 한단 말인가. 평생엄마 중에서도 ‘임시엄마’라니….  

쓸쓸한 연애 같은
입양이 결정된 후부터 시간은 골목길을 휘돌아가는 것처럼 구불구불 흘러갔다. 아기의 삐죽거리는 입술에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며 딸랑이를 흔들어주면서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기억해야 할 것들이 구석구석 숨어들면서 시간은 곡선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입양되는 날 아침이었다. 물론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준비해 온 옷으로 갈아입힐 것이었지만 엄마는 제일 예쁜 옷을 입혔다. 그리고 작은 발에 가장 예쁜 양말을 신겼다. 아기는 독일로 가는 한 대학생에게 맡겨진다고 했다. 그 시절 종종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유학생이나 가난한 여행자가 입양아를 데리고 목적지까지 가서 인계하곤 했다. 아기를 데리고 가는 이에게 엄마는 아기의 식습관과 트림 시키는 방법 등을 세세히 일러주며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연신 아기를 조용하게 ‘운반’ 하기 위해 수면제 같은 약을 먹일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했다. 나는 아기의 식습관 등이 적힌 종이를 접어 엄마 가방 속에 넣었다.

아이도 다른 날과는 달리 자꾸 칭얼댔다. 자신이 떠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유도 잘 먹지 않았다. 그때서야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아기를 꼭 이렇게 입양시켜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사회복지학 전공을 생각해 본 것도 사실이다. 아기는 낯선 사람과 생소한 환경에서 얼마나 부대낄까. 키가 자라고 생각이 자라면서 자신의 피부색과 검은 머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까? 아기를 업고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너를 안는 것만큼 쓸쓸한 일이 있을까.
붉게 물든 무릎을 맞대고 있으면
초저녁 매미 울음소리도 붉다.
매미는 죽기 전 가장 큰 소리로 운다.
일제히 울어대다 한순간 하얀 정적
그 적막함 때문에 매미는 
다시 한 번 목 놓아 우는 것이다.
쓸쓸함이란 그렇게 곡소리가 끊긴 상가집처럼 
적막한 것이어서
사랑도 이별도 한 순간의 통곡처럼 사라지고
매미 울음소리도 사라지면
붉게 무릎을 맞댄 저녁
아무것도 붙잡고 싶지 않은 시간이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는 세월처럼 흘러간다. 

-졸시 ‘쓸쓸한 연애’ 전문


아기와의 짧은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연애’ 같은 것이었다.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사랑. 시한부 사랑. 미래도 없는 사랑.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고 결국 돌아앉아 각자의 아픔만을 간직해야 하는 사랑. 저녁노을 같은 사랑. 엄마는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듯 아침부터 목 놓아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뒤로 한 채 아가를 업고 비탈길을 내려갔다. 

‘임시엄마’ 
그날 엄마는 눈이 퉁퉁 부어서 돌아왔다. 아기가 먹다 남은 우유가 병에서 몽글몽글 부풀어 오른 게 꼭 엄마의 불편한 속내 같았다. 아기의 침을 닦아 주던 손수건. 공갈젖꼭지. 아기의 체온이 축축하게 벤 기저귀. 그리고 갈아입히고 싸온 옷가지들을 쓸쓸하게 꺼내놓다가 엄마는 갑자기 통곡을 했다. 그래 어쩌면 엄마는 아기 때문에 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는 지금 엄마의 설움 때문에, 군에 간 오빠가 그립고, 이렇게 생이별을 해야 하는 엄마의 팔자가 한스러워서 우는 것일 테다. 한바탕 곡소리가 지나가자 집은 더 큰 정적에 휩싸였고 고요는 비를 머금은 구름처럼 더 무거워진 것만 같았다. 나는 손가락 하나도 들어올리기 힘든 무력감에 허우적거렸다. 엄마는 더 심했을 것이다. 다시는 아기를 키우지 않겠다던 엄마는 결국 그 적막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 이튿날 다시 새로운 아기를 받아왔으니까. 

엄마도 나름 요령을 터득한 듯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 위주로 아기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백일이 지나고 돌이 지나 아기가 낯을 익히면 떠나보내기 힘들다고 아예 갓난아기만 데려왔다. 엄마는 철저히 ‘임시엄마’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가들이 이상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새근새근한 모습은 별로 없었다. 자다가도 깜짝깜짝 놀랐으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콧등에 주름이 잡히도록 인상을 쓰기도 했다. 불안한 임신기간을 보낸 엄마 때문이었을까. 태열기로 성난 얼굴이 벌게지도록 밤이고 낮이고 울어댔다. 엄마는 아기를 안고 밤을 새웠으며 나도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백일 전후부터는 아주 순해지는 것이었다.

엄마의 이런 아기 돌보는 솜씨가 소문이 나면서 아기를 봐달라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위탁모에겐 몇 가지 지켜야 할 수칙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어린 자녀가 있어도 안 되고 남의 집 아이를 함께 맡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엄마도 거절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찾아오면서 점점 거절하기 힘든 상황들이 생겨났다. 동네의 특수한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청계천 시장이 가까운 동네여서 미싱사나 재단사 부부들이 많았다. 조용한 정오, 여기저기서 드르륵 미싱 밟는 소리쯤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동네였다. 아빠가 양복재단사인데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사연. 부모님이 여행가신 동안만 잠시 돌봐달라는 사연, 전혀 생소한 우리 가족의 먼 친척이라며 찾아와 아기를 강제로 맡기기도 했다. 엄마는 온갖 딱한 사정 때문에 아기들을 떠맡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집은 아기들이 들끓었다. 난 공부보다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등을 두드려 트림시키는 것 등에 더 익숙할 만큼 점점 ‘작은 위탁모’로 변해가고 있었다. 
 
삶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사륜구동차처럼 
그러나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었다. 물론 아기들 울음소리가 가득한 집에서 미혼모의 아기들을 돌보며 난 진즉 결혼이나 사랑에 대한 환상 따위는 버렸다. 훗날 내가 결혼해 아기를 하나만 낳은 것도 이때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때의 난 수험생이고 내 청춘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며칠 뒤 난 중요한 경험을 하나 하게 되었다.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밤길이었다. 어두컴컴한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비탈길 양쪽으로 점포들이 드문드문 불을 밝히고 있어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내 또래 여고생 하나가 조금 앞서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여울목처럼 심하게 허리가 꺾인 곳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위쪽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사륜구동차가 비탈길을 휘돌아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비상등을 켠 것처럼 불빛이 유난히 눈부셨다. 속도도 지나치게 빨라 보였다. 그 생각도 잠깐, 사륜구동차는 성난 짐승처럼 질주하더니 그대로 바로 앞의 세탁소를 들이박아 버렸다. 순간 난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세탁소 옆 약국으로 뛰어들었다. 세탁소 드럼통이 깨지면서 기름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비탈길로 콸콸 흘렀다. 

그날 난 갑자기 인생의 비밀 하나를 엿본 기분이었다. 삶이란 때때로 브레이크가 파열된 사륜구동차처럼 광폭하게 질주해 올 수도 있다고, 삶도 죽음도 사실은 제어불능의 속도일 뿐이라고.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앞으로 미친 듯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음날 등굣길에 난 가장 먼저 약국에 들러 여고생의 생사부터 물었다. 왠지 나 대신 사고를 당한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던 탓이다. 만일 죽기라도 했다면 난 어쩌면 평생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여고생은 다행히 다리를 좀 다쳤다고 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약국 문을 열고 나오자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조연희작가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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