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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교예 예술'2북한, 예술로 읽다(9)
  • 이철주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6.09.2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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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예《춘향전》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새로운 교예 양식에 대한 북측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은 2012년 10월8일 평양교예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교예극 ‘춘향전’(연출 김정철)에서다. 공중교예, 지상교예, 수중교예, 빙상교예, 요술 등 교예의 모든 요소를 극적으로 결합해, 춘향과 몽룡 사이의 러브스토리를 형상화하는데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네와 널뛰기, 줄타기와 ‘물 위에서 중심잡기’ 등의 종목이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이 공연은 그간의 무대예술이 이룬 성과를 접목해 북측 만의 아트 서커스 상품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럼 왜 ‘춘향전’이었을까? 우리 민족예술사에서 춘향전만큼 많이 다루어지고 또 예술사적 변혁의 시기마다 항상 최초의 작품이 됐던것도 드물다. 고전을 수용한 신소설의 첫 작품이 ‘옥중화’(1912)였고, 최초의 문예영화 역시 ‘춘향전’(1923)이었다. 최초의 실내극장인 협률사의 개관공연 프로그램도 ‘춘향의 놀이’(1902)였으며, 대한국악원 주최의 국극사 창립공연도 춘향전(1946)이었다. 분단 이후 남측 국립창극단의 첫 작품도 ‘춘향전’(1961)이었고, 최초의 오페라 역시 현제명 작곡의 ‘춘향전’(1949)이었다.

북측의 경우에도 리면상 작곡의 ‘춘향전’이 1948년에 최초로 공연이 되었고, 이후 북측의 민족가극의 본보기라 칭해지는 ‘춘향전’이 김정일 위원장의 창작지도에 따라 1988년 “피바다식 가극”으로 평양예술단(현 국립민족예술단)에 의해 초연이 됐다.

춘향전은 뛰어난 작품성과 극적 구조, 보편적인 주제인 지고지순한 사랑 등을 담은 영원한 ‘스터디셀러’이자 흥행의 보증수표로 인정받고 있는 바, 북측에서도 우리식 민족가극 예술의 걸작으로 민족예술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데서 기준으로 삼아야할 본보기 작품이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측이 최초로 시도하는 새 형식의 교예극에 ‘춘향전’을 선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춘향전은 많은 이본(異本)이 있지만 ‘열녀춘향수절가’를 바탕으로 한 북측의 ‘춘향전’은 남측과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민족가극 춘향전 총보>(1991) 서문에 밝힌 것처럼, 봉건적 신분제도와 빈부귀천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주제 해석이 뚜렷하다. 월매와 방자의 희극성을 제거하는 대신에 작품의 비극성을 강조하여 온갖 핍박과 고난을 극복하고 결국 사랑의 결심을 맺는 스토리는 영웅적인 비장감이 넘쳐나는 혁명가극과 흡사하다. 대사를 말하듯 노래하는 오페라의 레치타티보(recitative)를 배제하고 모든 노래를 ‘절가’(絶歌)화해서 대중성을 높인 것은 뮤지컬의 넘버에 가깝고, 춤이 적극적으로 결합해 중요한 표현수단이 돼 작품을 감상하는데 다양한 시각적인 감동과 극적 상상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 교예《춘향전》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북측의 ‘춘향전’은 1945년 리면상에 의해 처음으로 가극화되었고, 1947년 8월15일 해방 2주년 기념 연극으로 무대화됐다. 1948년 5월 국립예술극장에서는 리면상 작곡, 박광우 지휘, 라웅 연출로 ‘국립가극장 가극단’에 의해 창극으로 만들어졌고, 1954년 12월에는 박동실과 안기옥 작곡, 안영실 연출의 6막 구조의 새로운 창극이 ‘국립고전예술극장’ 제작으로 선보였다. 1964년에는 민요를 바탕으로 한 창극 ‘춘향전’이 리면상과 신영철 작곡, 김영희 연출로 ‘국립민족예술극장’이 제작을 했다. 그리고 1988년 12월19일 조령출 각색과 작사, 리면상, 강청, 성동춘 등의 집체(공동) 작곡으로 지금의 민족가극 ‘춘향전’이 초연을 했다.

최근에도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2012년에는 북측 유일의 국립해외예술단인 금강산가극단이 댄스뮤지컬 ‘춘향’을 무대에 올렸다. 조령출 각색의 춘향전을 기초로 한 대본으로, 금강산가극단의 책임안무가인 강수내 인민예술가가 안무를, ‘생일을 축하합니다’란 가요의 작곡가로 유명한 피바다가극단의 한진옥이 작곡을 한 이 작품은 북측 무용극 양식의 하나인 ‘무용음악조곡’으로서, 현대적 미감에 맞추어 창작한 것이다.

2015년에는 음력설(2.19)을 계기로 평양대극장에서 피바다가극단의 창작가들과 예술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작품이 큰 화제가 됐다. 새롭게 형상된 민족가극 ‘춘향전’(총연출 오경철)은 인상 깊은 명곡, 인민들의 사상 감정에 맞는 선율들로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작품의 주제곡이며 지금도 많이 불리고 있는 명곡 ‘꽃노래’를 비롯하여 1960년대 작품의 명곡들은 그대로 살리면서 관현악의 편곡을 새롭게 했다. 3시간 40분에 달하던 공연 시간도 2시간 40분으로 줄이면서 작품의 완성도는 더욱 높였다고 한다.

민족가극 ‘춘향전’을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는 국립민족예술단은 1972년 4월 3일 ‘평양예술단’으로 창립돼, 1975년 12월 ‘평양모란봉예술단’으로 개편됐다가, 1985년에 다시 ‘평양예술단’으로 확대 개편이 됐다. 1995년에 들어서 민족가극을 비롯하여 민족적 색채가 강한 작품을 주로 하는 ‘국립민족예술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단원은 약 300여 명 정도로 평양시 대성구역 화산동에 위치한 ‘봉화예술극장’에 상주하고 있다. “조선민족 제일주의”의 기치 아래 혁명가극 ‘밀림아 이야기 하라’, 민족가극 ‘춘향전’과 ‘박씨부인전’을 창작하였고, 전통 민속무용인 ‘장고춤’, ‘지게춤’을 비롯하여 민족적 색채가 짙은 음악, 무용 소품을 주요 연목(repertory)으로 하고 있다. 1973년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

▲희극 교예 - 손님과 함께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한편 교예가 평양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막간극’ 때문이다. 무대 전환을 위해 이루어지는 막간 교예는 기발한 재주 및 희극적인 동작과 연기로 구성되는 토막 교예와 요술(magic) 과정을 희화해 보여주는 막간 요술, 그리고 스탠딩 코미디와 같이 정치 풍자와 해학이 있는 막간극으로 나눌 수 있다. 간혹 동물을 출연시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교예를 예술과 선전의 경계에서 파악하는 가장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막간극의 강한 풍자인데, 반미와 탈제국주의, 남측의 부패한 권력이나 적대적 인물의 반동성을 부각하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다. 사회적 풍자의 경우, 질서와 단체성을 지적하거나 노동 현장성을 부각하는 등의 계몽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막간극의 전설로 통하는 이가 평양교예단에서 반세기 동안 활동한 인민배우 윤광섭이다. 1933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을 웃기는 재주가 남달랐고, 희극 배우의 꿈을 위해 학창 시절 취주악단에서 트럼펫을 불고 독학으로 희극 작품을 연구했다. 한국전쟁 당시 군대의 운전사로 복무한 그는 전후 평양1여객사업소의 운전수로 근무하다가 1959년 4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평양교예단(당시 국립곡예단)의 관계자에게 발탁이 돼 1959년 5.1절 경축공연 때 막간극 ‘장애물 경기’로 데뷔를 했다. 연기력 향상에 매진하던 그는 교예 막간극의 대본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이라 작품 창작까지 같이 하면서 불철주야 노력을 하였고, 마침내 처녀작인 ‘마이크 비판’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됐다. ‘골탕 먹은 중대장’, ‘북소리’, ‘개싸움’ 등 수십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 체력 교예 - 봉전회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1971년 4월 평양김일성경기장(당시 모란봉경기장)에서 열린 체육대회의 응원을 위해 참가한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부름을 받았다. 어릿광대로 분장한 그는 주석단으로 달려갔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기형적인 어릿광대 극을 하지 말고 우리식의 혁명적인 막간극을 더 많이 창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1971년 5월5일 평양교예단 방문 때에도 "아무런 교양적 가치도 없이 순수 웃음을 자아내는 어릿광대 극을 만들어 내놓는 것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며, “교예 막간극도 교예인 것인 만큼 그 형상적 특성에 맞게 화술을 기본으로 하지 말고 동작을 기본으로 해야 하며 높은 교예 동작과 기교를 잘 살려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북측 막간극의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윤광섭은 10년이 지난 1981년 8월 평양교예극장에 방문한 김 위원장의 앞에서 막간극 ‘교통순경’을 선보였고, 큰 박수를 받았다. 김일성 주석의 이름이 새겨진 고급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은 그는 2003년 70살이 되던 해에 인민배우가 됐다.

다시금 평양교예극장을 찾아 박수를 치고 탄성을 터트리며, 큰 웃음 속에서 뜨거운 동포애와 통일의 열망을 느끼게 될 날이 언제나 오려는지..., 다 같이 모여 춘향의 ‘사랑가’를 부르며 술잔을 나누던 시절이 다시는 오려는지...,

교예 춘향 https://www.youtube.com/watch?v=IJJxxIF6Z4g

희극 교예 - 손님과 함께 https://www.youtube.com/watch?v=8zR7Zf2uiPU

체력 교예 - 봉전회 https://www.youtube.com/watch?v=yapZ9vpTUYc

민족가극 춘향전 - 사랑가 https://www.youtube.com/watch?v=GtFFenHgf5o

이철주 편집기획위원 10년 넘게 남북 사회문화교류 영역에서 활동해 온 문화기획자다. 금강산가극단 내한공연 제작, 평양조선국립미술관 내한전 합의, 사할린 남북 해외 청소년 평화미술전 주관, 조선무용50년-북녘의 명무, 철원노동당사 DMZ평화음악회, 조선학교 중등교육 70주년 기념 꽃송이콘서트 등을 제작했다. 현재는 남북합동음악회와 평화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철주편집기획위원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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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09-28 19:58:46

    다음에는 제발 북한의 여성예술인들의 복장변천사에 대해서 추가로 올려주세요~!!!! 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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